[바이블시론-조성기] 얼마나 소중한 국적인데
입력 2012-09-18 18:3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말이 헌법 조문이 되기까지 인류는 수천년 동안 투쟁해 왔다. 그런데 과연 국민은 누구인가, 국민이 될 자격 요건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늘 제기되기 마련이다. 그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관과 시민관이 많이 언급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핵심은 국가는 최고의 시민공동체라는 것이다. 국가는 계약이나 동의, 협약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특정한 건국행위의 산물도 아니라고 했다. 국가는 자연법칙에 의한 본성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법칙에 따라 다수결 원칙을 지지했다. 누가 더 선한가로 따지면 이를 지지하기 힘든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시민을 구분함으로써 난점을 극복하려 했다.
자녀 외국인학교 보내려 위조
‘선량한 인간이 되는 데 요구되는 덕목을 선량한 시민이 반드시 소유할 필요는 없다.’ 정치적 질서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기만 하면 시민의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윤리적, 도덕적 규범을 철저히 지키는 거룩한 성자는 오히려 시민의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좀 심한 말로 하면 성자는 형편없는 시민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만 해도 이런 시민에서 노예, 외국인, 여성, 어린이는 제외되었다. 이들은 동의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법률상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성이 시민의 자격을 획득하여 실제적으로 참정권과 선거권을 갖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인권 면에서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흑인이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은 1965년으로 50년도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민이 누구냐 하는 문제가 민주주의 발전의 단계마다 제기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헌법 내에서는 논란을 피해갔다. 1948년 12월 20일에 공포 시행된 ‘국적법’은 지금까지 10여 차례 개정되었는데 이렇게 자주 개정되는 것만 보아도 국민 자격 요건을 정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국적 논란과 관련하여 재미있고 복잡한 사례가 하나 있다. 2008년 12월 31일 네덜란드를 출발한 미국행 비행기 노스웨스트항공 NW59기가 이륙 6시간 후 캐나다 영공을 지날 무렵, 임신 8개월의 우간다 여성이 아기를 조산했다. 그럼 이 아기는 어느 나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가. 우선 혈통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간다 국적은 자연히 취득하게 되고 그 다음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국적이냐 캐나다 국적이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미국 항공사 소속 비행기 안은 미국 영토로 간주되므로 미국 국적도 취득할 수 있고 캐나다 영공을 지나고 있었으므로 캐나다 국적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정부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지만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 영공도 속지주의 적용 대상’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려 2009년 1월 8일 아기의 이름을 ‘사샤’라 지어주고 캐나다 시민권도 부여했다.
국민 자격 걸맞은 성품 필요
이렇게 한 나라의 국민 요건을 갖추어 국민 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데 ‘외국인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식의 국적을 위조하기까지 한 부모들은 과연 국민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은 요즈음이다. 국적법에 보면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는 요건 중에 ‘품행이 단정할 것’이라는 조항이 있다.
품행은 성품과 행동이다. 성품과 행동이 단정해야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 외국인이 일반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요건이긴 하지만 내국인도 국민의 자격을 부여해준 대한민국에 보답하기 위해 ‘품행이 단정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조성기(숭실대 교수·문예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