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별난 화장실
입력 2012-09-18 18:31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화장실을 접했다. 2005년 여름 아프리카 단기선교팀을 취재하러 케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단기선교팀원들은 현지인들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마사이족 가정에 민박을 했다. 말이 민박이지 평원에 쇠똥과 풀로 지은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었다. 울퉁불퉁한 땅에 얇은 가죽 같은 것을 깔아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난 단기선교팀원들은 사방이 탁 트인 평원에서 용변을 해결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처했다. 남녀를 막론하고 대변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남자들은 노상방뇨하면 그만이었지만 여자들은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소변을 참아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넓고 큰 화장실이었지만 문명국에서 자란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터키 에베소에 있는 공중화장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BC 620년쯤부터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떠올랐고, BC 2세기에 인구 25만명을 자랑하는 아시아 최대 도시로 성장한 에베소 유적지에는 50명가량이 동시에 볼일을 볼 수 있는 수세식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칸막이는 없었고 좌변기 형태로 돼 있었다. 공중화장실을 만든 고대인의 지혜를 엿보게 했다.
중국 남서부 지역을 여행할 때 공중화장실에 들렀다가 놀란 적이 있다. 화장실 전면에 칸막이가 없었던 것이다. 사방에 칸막이가 없어 앞사람이 용변 보는 모습이 뒷사람에게 노출되는 일렬종대로 된 화장실도 있었다. 어쨌거나 볼일 보는 모습을 기다리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중국이 이런 구조로 화장실을 만든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G2 품격과는 맞지 않는다.
미 뉴욕 맨해튼 스탠다드 호텔 18층에 있는 클럽 ‘붐붐룸’의 화장실은 통유리로 돼 있다. 화장실 이용자는 도시 전경을 즐길 수 있지만 행인들도 화장실 안을 엿볼 수 있다. 화장실을 이용한 사람의 소감이 익살맞다. “화장실에서 바라본 풍경은 멋있지만 바깥에서 화장실을 보면 끔찍하다.”
최근 세계 최초로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군 송도 앞바다에 공중화장실이 들어섰다. 도는 남해군 거제시 등 9곳에 바다화장실을 만들 예정이다. 바다화장실은 양식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근처를 지나가는 선원이 이용하도록 만든 것이다. 한 곳당 설치비는 6000만원. 한국산 굴에서 노로바이러스가 나왔고, 미 식품의약국(FDA)이 한국산 냉동 굴에 대해 수입 중단 조치를 내린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별난 화장실이 참 많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