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영 (13) 내 영어실력이 미국대학서 공부할 만큼 되다니…

입력 2012-09-18 18:25

“해영씨, 어디서 영어공부 했나요.”

“보츠와나에서 14년을 살았는데 그곳에서 배웠어요.”

“그렇군요. 성적이 잘 나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곧 서류와 학비를 마련해서 등록하세요.”

나약대학교 맨해튼 캠퍼스의 유학생 담당자 그레이스씨가 축하인사를 해 왔다. 입학을 위한 영어시험 결과가 합격이라고 했다. 별다른 과정 없이 바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내 영어 실력이 미국 대학에서 공부할 만큼 된단 말이지!’ 2004년 1월, 나약대학교에서 영어시험을 치른 뒤 축하의 말을 듣고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오니 한겨울 바람이 씽씽 불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시험에 합격하고도 기뻐하지 못한 채 걱정거리로 안고 수많은 인종이 오가는 뉴욕 거리를 혼자 터벅터벅 걸었다. 몸보다 더 추운 것은 마음이었다. 길을 건너려다 빌딩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작은 키에 구부정한 상체에다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청바지 위로 변변한 코트도 없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랐다.

“참 거지 같은 사람이군. 야, 너 누구야.”

빌딩 유리에 비친 사람이 대답했다.

“나, 김해영이야. 아프리카에서 생존하기 위해 환경과 치열하게 싸워 이기고 온 사람이야. 남들 보기에는 거지 같을 수 있지만 나는 내 모습에 대해 불평하지 않아. 나는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고 어려운 가운데 동생들도 돌봤고 가진 기술로 아프리카 청소년을 가르친 사람이야.”

깜짝 놀랐다. 유리에 비친 사람이 현실 앞에 실재한 나보다 더 당당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고독, 고통, 고생을 싫어한다. 어느 사람이 홀로 있기를 바라고, 영과 육이 아프고 병들기를 바라며 매일의 삶에서 지겨울 정도의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거울 속에 비친 김해영은 달랐다. 고통과 고생, 고독으로 뭉쳐져 단단하게 단련된 인간이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그러한 경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마음을 지켜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돌아봤다. 나는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냈다. 선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던 땅에서 나에게 만큼은 선교를 제대로 했다. 형식적인 종교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하고 성장했다. 게다가 아프리카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도 살아 미국 땅에 와 있다. 내 인생의 최고 성취를 꼽는다면 무엇보다 내 마음에 품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빌립보서 2장 6∼8절 말씀을 체득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의 아들 된 특권을 내려놓고 인간의 모양으로 오셔서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것. 나는 국내 기술자로서의 명예와 삶을 내려놓고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이처럼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나는 점차 그리스도인이 돼 갔다.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거기엔 볼품없는 내가 아니라 아주 당당하고 멋있는 인간이 보였다. 고생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고통을 다스리면서 선교사가 됐다. 고독한 사막생활을 견디면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다. 나는 빌딩 유리에 비친 보잘것없는 나와 소위 ‘맞짱’을 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막에서도 한 인생을 구원하고 운명과 같은 인생의 고통과 고생을 불평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 뉴욕 땅에서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나는 그동안 하나님의 지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일 역시 다 잘될 것이란 자신감과 믿음이 갑자기 솟아올랐다. 나의 유학생활은 이 자신감과 믿음으로부터 시작됐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