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에 가로막힌 중증장애인 휴양시설
입력 2012-09-17 19:02
국내 최초의 중증장애인용 숙박시설 ‘하조대 희망들(조감도)’이 주민 반대에 막혀 4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하조대 희망들은 동해의 대표적 휴양지 중 하나인 하조대 해수욕장(강원도 양양군 하광정리)에 건립될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중증장애인용 콘도시설이다. 서울시가 2009년 건립을 추진해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상반기 완공됐어야 하지만 공사는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서울시와 양양군이 시설의 적법성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는 가운데, 최근 하조대 인근 주민들이 공사현장을 봉쇄했다. 이에 맞서 장애인 단체들은 건립을 촉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서울시·장애인단체 vs 양양군·주민들=서울시는 지난 6월 양양군을 상대로 하조대 희망들에 대한 ‘건축협의 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달에는 판결을 근거로 착공신고서를 양양군에 제출하며 공사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양양군은 항소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신고서를 반려한 상태다.
언제든 공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하조대 주민들은 지난달 말부터 현장봉쇄에 나섰다. 주민들은 공사장 입구를 차량으로 막은 채 조를 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서울시가 착공에 들어가면 몸으로 막겠다는 각오다. 지난 14일에는 주민 150여명이 군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주민 반대가 거세지자 이번에는 장애인단체들이 나섰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지난 13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양양군이 장애인 숙박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18일에는 양양군청 앞에서 항의시위도 열 계획이다.
◇숙박시설이냐, 복지시설이냐=양측 주장은 하조대 희망들이 복지시설인가, 숙박시설인가를 두고 엇갈린다. 건축법상 숙박시설만 건립이 가능한 부지이기 때문이다.
양양군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주민설명회를 할 때 (하조대 희망들이) 장애인수련시설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예산도 장애인 시설 건립예산”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하광정리 황영구 이장도 “(부지가) 숙박시설지구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거다. 장애인을 싫어하거나 차별하는 게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일단 법원의 1심 판단은 숙박시설이라는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황인식 서울시 장애인 복지과장은 “1심 결과에 승복하겠다던 양양군수가 판결이 난 뒤 말을 바꿨다”며 “주민 반대가 계속될 경우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관련 주민들을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숙박시설이냐, 복지시설이냐 논란을 벌이지만 반대하는 이유는 결국 장애인들이 바닷가에 오는 게 싫은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