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금품 왔다 갔다… ‘기막힌’ 어린이집 입찰 비리
입력 2012-09-17 13:35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을 입찰하는 과정에서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금품 요구와 권리금 수수 행위 등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3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는 관리동에 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입주자 대표들은 어린이집을 운영할 원장을 선정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선정권을 가진 입주자 대표들은 입찰 희망자들에게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고, 입찰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금품을 건네는 경우가 많다.
김모(42·여)씨는 “지난해 9월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에서 어린이집 위탁 운영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주자대표회의에 연락했더니 아파트 발전기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의 A아파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박모(51·여)씨는 “어린이집 위탁 운영 공고를 내면 브로커들이 먼저 알고 입주자대표회의에 리베이트를 준 뒤 운영권을 얻은 다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권리금을 붙여 되파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도 지난 3월 브로커에게 4000만원을 권리금으로 지불했다.
계약기간이 만료될 즈음 아파트 동 대표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우면 재계약이 거부되기도 하고, 입찰에 실패하면 빈손으로 쫓겨난다. A아파트 어린이집 원장 박씨는 “오는 25일 2년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재계약이 아닌 재입찰을 결정했다”며 “어린이집 시설비로 1억원이 넘게 들었는데 이대로 나가면 어디서 보상 받을 수도 없다”고 호소했다. 학부모 신모(35·여)씨는 “재입찰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 바뀔지 모르는 교사 밑에서 아이들이 적응하기 힘들고, 교육의 질도 떨어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거액의 금품과 권리금은 결국 어린이집 운영 부실과 학부모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미래영유아교육연합 이인숙 대표는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가이드라인에는 총 보육료 수입의 5% 이상 임대료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증금과 월임대료가 보육료 수입의 20∼30%를 차지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동주택관리규약 가이드라인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고 말했고, 보건복지부 관계자 역시 “민간 어린이집 운영 및 매매 행위는 관계 법령이 없어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