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뉴딜 정책, 또 다른 진실

입력 2012-09-17 18:08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대공황으로 미국은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주식이 폭락하면서 기업들은 잇달아 도산했고 실업률이 25%를 넘어섰다. 미국의 1932년 국민총생산은 1929년의 56%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한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미국인을 위한 뉴딜’을 주창하며 대공황 타개에 나섰다. 뉴딜(New Deal)이란 포커판에서 새로운 카드를 돌리듯 경제 운용의 새 판을 짠다는 의미다. 루스벨트 정부는 경제정책에 직접 개입했다. 미국이 건국 이래 유지해 오던 자유방임주의에서 벗어나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강화했던 것이다.

여가시설 확충으로 실업해소

부실한 은행은 퇴출시키고 화폐 규제에 적극 개입했다. 정부 지출을 늘리면서 주요 농산물의 생산량을 조절해 적정가격을 유지했다. 테네시강 유역을 개발해 후버댐을 건설하고 고용을 창출했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고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을 정했다. 노동자 농민 흑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뉴딜 정책은 야당으로부터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맹비난을 받았으나 그 덕에 민주당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 임기가 끝난 1953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이상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뉴딜 정책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뉴딜 정책은 이것 말고 또 다른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대공황 초기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 연방정부는 2차 뉴딜정책을 실시한다. 핵심은 구호정책이다. 실업자, 빈민들에게 저리 대부를 제공하거나 공공근로를 통한 대규모 공익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공익사업에는 도로, 병원, 놀이터 건설과 자연보존 활동이 포함돼 있다. 오늘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놀이터 운동(Playground Movement)’이다.

루스벨트 정부는 미국 전역에 놀이터, 공원, 야영장, 수영장, 스키장 등 여가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안전요원을 길러냈다. 연방구호국은 여가시설 자금을 지원하면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고용했다. 시민노동국은 전국에 3만5000개의 놀이터와 운동장을 개보수하거나 신축하면서 4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여가노동국은 대공황 기간 1만2700개의 놀이터를 만들고 8500개의 피트니스센터를 신축했으며 전국에 750개의 수영장과 1000개의 아이스링크를 만들었다.

경제가 풍전등화처럼 위기에 처한 시기에 연방정부가 앞장서서 여가시설 확충에 국가 재원을 집중 투입한 것은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가선용은 소비나 낭비가 아닌 재창조(re-creation)란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서 미국은 1900년대 초에 산업사회에서 파생된 청소년, 노인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레크리에이션 운동을 일으켰다. 여가선용이 국민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점과 정부가 지역민을 위해 레크리에이션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도 인식했던 것이다.

다음 정권도 눈여겨 볼 필요

실제로 당시 실업자이던 젊은이들은 상당수 레크리에이션 강사, 운영 및 안전요원 등의 교육을 받고 전국의 여가시설을 운용했다. 지역민의 여가선용을 돕고 일자리 수백만개를 창출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둔 것이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일자리 창출을 공약의 최우선 순위로 내걸고 있다. 외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어도 눈이 한껏 높아진 우리네 젊은 실업자들의 안중에 들 리가 없다. 한국판 뉴딜 정책이라는 4대강 유역 개발사업도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에는 실패했다. 약 80년 전 여가시설 확충과 요원 양성으로 앞서간 개발사업을 펼친 미국의 사례를 우리도 눈여겨 볼 시점이다.

체육부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