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부정행위’ 피해 사례 담은 한글편지 첫 공개
입력 2012-09-17 18:52
“과거를 이틀 동안 무사히 본 후에, 선비들이 남을 데리고 (시험장에) 든 사람이 있다고 해 (합격자) 방을 내지 않고 그 과거를 파장(罷場)하고 다시 회시(會試)를 보기로 했고, 처음에는 (회시 보는 날을) 8일로 정하였다가 또 16일로 연기했는데 그날 반드시 볼지, (이후로) 머물기가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선비들은 무효가 결정되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또 무효가 확정되었을 때 얼마나 낙담했을까. 당시 과거 부정행위로 인한 실제 피해 사례를 담은 한글 편지가 처음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가 17일 공개한 이 편지는 1677년(숙종 3년) 2월 선비 이동표(1644∼1700)가 과거를 본 뒤 어머니에게 보낸 것이다. 다른 응시자 부정행위로 시험 자체가 취소되자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언급한 시험은 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2차로 치르던 회시였다. 당시 10여명이 대리 시험을 치른 게 발각되자 숙종은 무효를 결정했다. 실록에도 과거 무효는 기록돼 있지만 구체적 피해 사례 자료가 나온 건 처음이다.
한중연 이래호 연구원은 “이동표가 어머니를 걱정해 편지에선 감정을 절제했지만, 같은 해 8월과 10월에 다시 실시된 초시와 회시에 응시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충격이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동표는 그때 회시에서 장원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1683년 실시된 과거의 향시에선 2등, 회시에선 장원 급제했다. 이후 궁중의 경서·사적을 관리하는 관직인 홍문관의 부수찬(종6품) 벼슬까지 올랐다. 한중연은 19일 ‘제8회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이동표 한글 편지를 소개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