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대통령의 말과 행동 신중했어야

입력 2012-09-17 18:07


“일본 극우파에 빌미 제공한 꼴… 문화교류 확대해 전향적 미래관계 형성하길”

나라 안에서 가장 큰 뉴스메이커는 대통령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매우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지니기 때문에 미디어는 늘 초미의 관심으로 대통령의 행적을 쫓는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 대통령은 자기 나라 국민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기 때문에 행동 하나, 말 하나에 특별히 신중을 기하고 있다. 상대국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첨예한 문제라도 매우 두루뭉술한 외교적 언사를 구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달 10일에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 관련 직설화법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역대 정권의 대통령들은 독도 방문을 그간 애써 외면했다. 자칫하면 우리가 얻는 실익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도가 우리 땅임은 우리 국민 누구도 의심하지 않기에 대통령이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에 비해 많은 일본 국민들은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일부 극우파 단체나 정부 관료, 언론이 간헐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서 국민감정을 부추기려 했지만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에 관한 몇 마디 말들은 그동안 잠잠하던 일본 극우파에게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특히 일왕과 일본의 국제적 위상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말이 그들을 매우 자극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상대국의 지도자를 호칭할 때는 그 나라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준다. 일반 국민과 언론은 다르게 부를 수 있어도 공적인 외교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다. 이 대통령은 일본이 사용하는 ‘천황’ 대신에 ‘일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왕의 사과를 요구했다. 우리 입장에서 는 분명히 속 시원한 말이었다. 하지만 왕을 신성시하는 저들은 분통이 터졌던 것 같다.

특히 일본인들은 “일본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 대통령의 말에 더 속상해했다. 울고 싶은 참에 따귀를 때려준 것같이 이 말은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존심에 무척이나 상처를 준 것이다.

철저한 계산 하에 정제된 말을 사용하여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국가 간 외교의 기본 원칙이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자극했다. 그로 인하여 그의 역사적인 독도 방문의 의미가 오히려 퇴색한 느낌이다.

일단 감정이 앞서면 논리적인 생각이나 객관적인 사실은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다. 개인 간은 물론이고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내 편은 옳은데 상대방은 억지 생떼를 쓰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객관적인 사실이나 자료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사실을 말하는데 상대방은 전혀 근거 없는 거짓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리들이나 언론들이 자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증거만을 일방적으로 계속해서 제시해 주면 그런 성향은 더욱 깊게 자리 잡는다.

양국이 독도 문제로 종종 불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같이 오랜 기간 전방위적으로 감정적 갈등을 빚은 적은 없었다. 대부분의 일본 언론과 정부 관리들이 전례 없이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으로 자국민들의 감정을 부추기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런 감정 충동으로 그동안 무관심했던 일반의 일본 국민들이 서서히 이들의 편향된 시각에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두 나라 사이의 인식의 차이는 너무 넓게 벌어졌다. 그럼에도 장기적이며 전향적 미래 관계를 위해서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문화적 교류의 장을 더욱 넓히는 방법밖에 없다. 민간 차원에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갈 때 정치적 선전과 선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사실에 근거한 논쟁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감정의 선동은 자제해야 한다.

김영석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