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황금반지의 저주

입력 2012-09-17 18:07

라인강 바닥에 숨겨진 황금으로 만든 반지를 둘러싸고 지키는 이와 훔치고 빼앗는 이들의 파란만장한 사연. 고대 게르만족의 신화 ‘니벨룽겐의 영웅담’이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이를 소재로 26년에 걸쳐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총 4부의 대하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중 제1부는 ‘라인의 황금’. 황금반지를 낀 자는 온갖 권력을 손에 쥐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마력을 갖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반지의 저주를 피할 수 없다는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존 로널드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고대 게르만의 전설에서 얘기의 단초를 빌려온 것이다. 바그너는 황금을 지키는 이를 아름다운 요정으로 설정했으나 톨킨은 그가 창안한 호빗족으로 묘사한다. 물론 이 둘의 스토리 전개는 전혀 다르다.

황금은 누구나 원하지만 황금을 가진 자가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않으면 저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는 로또 당첨자들의 비극적 결말에서 종종 확인되는 사실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황금을 가장 많이 지닌 나라가 세계경제를 주물렀던 시대가 있었다. 금본위제에 입각한 기축통화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기축통화는 한 나라의 화폐이자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신뢰받는 통화다. 첫 번째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였다. 하지만 파운드는 1차 대전을 거치면서 지구적인 이해보다 영국의 이익을 앞세운 탓에 미국의 달러에 밀리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은 전 세계 황금의 3분의 2를 가지고 있었고,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황금기를 맞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승전국이나 패전국이나 미국의 달러와 상품을 갈망했다. 하지만 금본위제는 금보유량만큼만 통화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달러 공급은 곧 한계에 이르렀다.

마침내 미국은 1971년 ‘달러와 금의 교환중지’를 선언한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달러를 쓸 곳은 계속 늘어나는데 보유하고 있는 금은 한정돼 있던 탓이다. 이로써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상한 것은 이후 달러 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는데도 여전히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에 있다는 점이다.

달러의 위상 추락에도 불구하고 대역을 맡을 통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난 14일 3차 양적완화 조치를 통해 달러 살포를 다시 시작했다. 또 한 번 각국의 달러 보유자산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황금반지의 저주는 미국뿐 아니라 달러 체제로 연계된 지구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저주의 끝은 어디일까.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