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사람의 성품과 글
입력 2012-09-17 18:08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원대한 기상을 볼 수 있다고 평한 작품이다. 뒤 두 구절을 보면 남들과 각축하는 조바심이 없고 멀리 내다보는 당당한 여유가 있다.
‘대학’에 ‘마음속에 차 있으면 외부로 드러난다(誠於中 形於外)’는 말이 있다. 표정이나 말씨도 그렇지만 글도 그렇다. 특히 시는 한 사람의 앞일을 예견하기도 하는데, 이를 시참(詩讖)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 분들은 죽을 사(死)자나 끊을 단(斷)자처럼 흉조를 떠올리게 하는 말은 시에 꺼렸다.
선조 때 우홍적은 29세에 죽었는데 7세에 쓴 시가 이렇다. “노인의 머리 위 흰 눈, 봄바람 불어도 녹지를 않네(老人頭上雪 春風吹不消)” 식자들이 요절할 것이라 예견했다. 당나라 때 양갓집 딸 설도는 우물가의 오동을 노래했다. “가지는 남북의 새를 맞이하고, 잎은 오가는 바람을 전송하네(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나중에 기생이 됐다. ‘어우야담’과 ‘지봉유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반면 송태조 조광윤은 미천할 때에 취해서 밭 가운데 누워 자다가 해가 떠오르는 걸 보았다. “해저를 떠나기 전에는 천산이 어둡더니, 중천에 떠오르니 만국이 밝구나” 조선 태조 이성계도 왕이 되기 전에 백운대에 올랐다. “눈에 보이는 곳 모두를 내 땅으로 한다면, 초월 땅 강남인들 어찌 포용하지 못할까(若將眼界爲吾土 楚越江南豈不容)” 두 개국자의 기상이 어금버금하다. 서거정은 동인시화에서 넓고 큰 도량을 언어로 형용할 수 없다고 했다.
글에 담긴 기상은 달라도 그 영험함이 이와 같다. 타고난 성품이 잘 바뀌지는 않지만 조급하거나 들뜬 기운으로 함부로 내뱉는 언설은 삼가야 할 일이다.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다르고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기 때문이다. 품격 있고 문아(文雅)한 글은 오랜 교양의 축적에서 나오는 법이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