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어항을 나온 물고기’

입력 2012-09-16 19:54


‘분단된 지 너무 오래됐구나.’ 연극 ‘어항을 나온 물고기-정명’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연극은 북한 체제 종식을 위해 폭탄을 던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청년의 이야기다. 굶주림으로 죽는 어린이, 아들의 밀고로 수용소로 끌려가는 아버지 등 북한 문제의 암담한 현실이 가득 펼쳐진다. 연기하는 배우의 반은 실제 탈북자라서 연기가 절절했다.

그러나 그 절절함이 거북했다. 그 북한 청년을 윤봉길 의사, 그가 던진 폭탄으로 죽은 북한 고위 관리를 이토 히로부미로 바꿔서 생각하니 몰입이 됐다. 북한의 다른 어떤 문제보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고 죽여도 되는가, 대의를 위해 어린 생명을 죽여도 되는가 같은 논쟁이 가슴에 더 와 닿았다.

이렇게 현재 북한 문제는 70∼80년 전의 일제시대보다 내게는 더 먼 이야기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인간의 본성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풍요롭고 자유롭다. 그렇기에 북한의 굶주림과 억압은 내 일이 아니다. 그런 반면 요즘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악 범죄로 인해 사형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래서 굶주림, 체제보다 생명에 관한 이슈가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일 것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라는 타의에 의해 계속 변해왔다. 한때 북한 사람은 얼굴이 빨개서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는 한 술 더 떠 김일성 얼굴이 돼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 사람이 우리와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 이어서 이산가족상봉 캠페인으로 그립지만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땅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경제원조의 대상으로 인식됐다.

그렇지만 같은 민족이기 전에 느끼는 것은 언제나 틈만 나면 우리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탈북자로 위장 잠입한 간첩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그래서 북한 이야기는 언제나 낯설고 불편했다. 마음 한켠에서는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찬 한국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받을 상처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불이 켜지고 보니 극장 객석은 가득 차 있었다. 모두 20대 젊은이들이다. ‘쉬리’ ‘JSA 공동경비구역’ ‘의형제’ 등 분단이나 북한과 관련된 영화가 상영됐을 때 청소년기를 보내고, 반공 교육을 그다지 받지 않고 자란 세대. 이들은 북한 사람들이 지금 겪는 문제를 체제나 사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안주연(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