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박근혜의 결단이 필요하다

입력 2012-09-16 19:53


옛날 위나라 임금 영공(靈公)에게 사랑받는 소년 미자하가 있었다. 당시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탄 사람은 다리를 절단하는 법이 있었지만 미자하는 어머니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임금의 명령이라고 속여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그것을 들은 영공은 죄를 묻기는커녕 “효성이 지극하구나. 어머니를 생각한 나머지 제 발이 잘리는 것도 잊고 있었으니”라며 크게 칭찬했다. 또 과수원에 함께 산책 나갔을 때 복숭아를 먹던 미자하가 너무 맛있어 먹다 남은 복숭아 반을 권하자 영공은 “임금인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하구나. 제가 먹던 것도 잊어버리고 나에게 먹으라고 권하니”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미자하의 얼굴이 옛날만 못하자 영공은 그가 앞서 한 일들이 괘씸하게 생각돼 말하기를 “이 놈은 거짓말로 내 수레를 타고 나간 적이 있었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인 나에게 먹인 일도 있었다”고 했다.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비자는 용의 턱밑에 거슬러 나 있는 비늘, 즉 역린(逆鱗)에 비유하며 신하로서 임금의 치명적인 약점이나 허물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 마음속 변화를 헤아려 설득하기가 어려움을 역설했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90여일 앞두고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5·16 군사쿠데타, 유신독재 등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일어난 과거사에 대해 박 후보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나 측근들도 부동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는 박 후보가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해 조속히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박 후보의 출구전략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설득이 쉽지 않은 듯하다. 기자가 만나본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모두 과거사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결국 박 후보의 입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하지만 박 후보는 인륜과 정치 사이에서 여전히 고심하고 있다. 그런 박 후보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홍일표 대변인이 박 후보를 대신해 ‘인혁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가 사전 협의가 되지 않았다며 혼선이 빚어지자 사의를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박 후보의 뜻을 거슬러 직언할 수 있겠는가.

고민하는 박 후보의 마음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아버지를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딸로서 박 전 대통령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심초사한 것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이 컸을 것이다. 박 후보는 1989년 10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당시 유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아버지를 이해할 날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하셨다. 너무 많이 유신의 평가가 잘못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박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선 이상 박 전 대통령을 뛰어넘는 ‘Beyond 박정희’를 기대하고 있다. 단순히 딸로서 아버지의 업적을 기념하는 선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당시 퍼스트레이디로서 활동하기도 했던 만큼 책임감을 갖고 유신의 공과(功過)를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공(功)은 스스로 강변하기보다 남이 인정할 때 의미가 있고, 과(過)는 남이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성찰하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박 후보가 말한 대로 과거사를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은 박 후보가 결단해야 할 때다. 그리고 직접 나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명쾌하게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