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는 1세대 희극인… 29년째 ‘전국노래자랑’ 진행
입력 2012-09-16 18:24
방송인 송해의 웃음 뒤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굴곡진 인생사가 있다. 나무처럼 사람도 인생 궤적이 나이테로 그려진다면 그의 나이테는 누구보다 굵고 진할 것이다.
송해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해주예술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는데,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그의 삶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원래 이름인 ‘송복희’를 버리고 송해라는 새 이름을 지은 건 1951년 1·4 후퇴 때다. 배를 타고 월남하던 중 바다를 바라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해(海)’로 바꿨다.
1953년엔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임무’를 수행했다. 군대에서 통신병이던 그는 7월 27일 오전 9시, 모스 부호로 전군(全軍)에 휴전 전보를 송신한다.
전쟁이 끝나고 2년 뒤인 1955년, 송해는 창공악극단에 가수로 들어가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후 1세대 희극인으로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그가 지금의 ‘국민 MC’ 칭호를 얻기 시작한 건 1984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면서부터다. 올해로 29년째, 송해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한민국 일요일을 책임지는 ‘일요일의 남자’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그의 삶에 언제나 환희와 행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여 년 전,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한남대교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건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지금도 한남대교를 건너지 못 해요. 강북에서 집(도곡동)에 가야할 때도 한남대교를 넘어가야 할 것 같으면 먼 길을 돌아서 (한남대교 인근에 있는) 동호대교를 이용해요. 제가 (아들이 사고 난) 자리가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거든요.”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