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청년의 각오 “강남스타일 새 버전 보실라우”

입력 2012-09-16 18:24


십수 년 전 일이다. 방송인 송해(본명 송복희·85)가 재계 인사들의 한 모임에 참석했다. 송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를 포함한 연예인 몇 명이 ‘오마케(御負け·덤)’로 초대된 자리였다.

송해는 구석 좌석에, 기업인들은 홀 중앙 메인테이블에 앉았다. 그렇게 한창 행사가 진행되는데, 어떤 사람이 오더니 뒤에서 손으로 송해 눈을 가리며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대한민국 제일 부자가 오셨네.”

뼈마디가 굵고 큰 손이었다.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송해는 누군지 직감했다. 예전부터 친분 있던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이었다. ‘나보고 부자라니… 돈푼깨나 있다고 사람 무시하는 건가.’ 송해 표정이 싸늘해지자 정 회장이 그를 끌어안으며 달랬다.

“부자라는 게 별 게 있겠어요? 사람 많이 알면 부자 아닙니까. 현대가 아무리 차 많이 만들어봤자 뭐하겠어요. 송 선생께서 ‘현대 차 나빠요’ 해버리면 우린 망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송해 역시 맞다 싶었다. 지난 10일 만난 송해는 이렇게 말했다. “내년이면 ‘전국노래자랑’ 진행한 지 30년째가 돼요. 그 전엔 교통방송에서 한 프로그램을 17년 동안 했어요. 같이 일한 PD가 300명이 넘죠. 그러니 출연자까지 합하면 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겠습니까. 저에겐 사람이 재산이에요(웃음).”

희극인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 입성하다

‘한국 최고의 갑부’ 송해를 만난 건 서울 낙원동 한 허름한 건물에서였다.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가 약속 장소인 사무실 앞에 서니 작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韓國元老演藝人常綠會(한국원로연예인상록회)’. 송해가 1990년대 중반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국내 원로 연예인들의 사랑방이었다.

그가 좋아한다는 천도복숭아를 나눠 먹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날 송해를 만난 건 추석 연휴인 30일과 10월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그의 공연 때문. 타이틀은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쇼 시즌2-팔도유랑 송삿갓(빅쇼 2)’으로 정해졌다. 대관이 까다로워 문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세종문화회관에서 희극인이 공연을 여는 건 송해가 처음이다.

공연을 기획한 계기를 물으니 지난해 얘기를 꺼냈다. 송해는 지난해 9월, 데뷔 56년 만에 처음으로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쇼’라는 제목으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공연을 열었다. 이후 올해 6월까지 전국 9개 도시를 돌며 팬들을 만났다.

“원래 ‘빅쇼’를 한 번만 하고 안 하려고 했어요. 방송 일도 저한테 작은 일이 아니고 건강도 신경 써야 돼서…. 그런데 막상 공연을 여니 정말 좋더라고요. 공연에 노인들만 오는 게 아니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와서 놀랐죠. 많은 사람들이 효도한다고 부모님을 모시고 왔더라고요. 그리고 공연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올해도 계속하자고 사람들이 권해서 결국 또 하게 된 거죠.”

말하자면 이번 ‘빅쇼 2’는 지난 공연의 ‘앙코르’인 셈이다. 하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다. ‘빅쇼 1’은 옛 가요에 송해의 개인사를 포개 콩트와 노래 등을 상연했다. 하지만 ‘빅쇼 2’는 송해가 전국을 누비며 각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와 특색을 소개하는 얼개다. 예컨대 팔도를 유랑하다 전북 남원에 도착한 송해는 춘향전 속 이몽룡으로 변신해 멋들어진 뮤지컬을 선보인다.

“요즘 인기를 끄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부르신다고 들었는데 진짠가요?”

“하하. ‘강남스타일’은 아니고 그 노래를 각색한 ‘남원스타일’을 부를 거예요.”

“그 노래의 백미는 안무인 ‘말춤’인데.”

“(팔을 들어 ‘말춤’ 추는 시늉을 하면서) ‘말춤’도 추고 ‘당나귀춤’도 추고 다 할 거예요. 마지막엔 춘향이 월매 사또 다 무대에 나와서 난리가 날 겁니다. 제가 노래도 하는데 몇 곡 부를지 모르겠어요. 객석 분위기 좋으면 메들리로 이 노래 저 노래 다 할 생각이어서(웃음).”

팔도유랑 송삿갓

송해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더구나 그는 소문난 애주가 아니던가. 건강 비결이 궁금해졌다.

그가 내놓은 답변은 이러했다. 우선 방송 녹화가 없는 날이면 매번 낙원동 사무실로 ‘출근’하는데,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집이 있는 도곡동에서 지하철을 탄다. 종로3가 역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걷는다. 이런 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즉, 송해에겐 운동이 생활화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강 유지 비결은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송해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 나이쯤 되면 무엇보다 ‘내가 할 일’이 있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어요. 몸이 아프다가도 ‘낼모레 방송이다’ 싶으면 힘이 불끈 납니다.”

그는 지금도 전국노래자랑 본선이 다가오면 녹화가 있는 고장으로 미리 향한다. 최소한 하루 전날 도착해 해당 지역 목욕탕과 재래시장에 들른다. 이유는 ‘사전 취재’를 위해서다.

“시장에서 순댓국 한 그릇 먹으며 주민들과 대화 나누다 보면 동네 현안을 비롯해 별의별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어요. 거기서 들은 내용을 무대에서 딱 꺼내놓으면 객석이 뒤집어지는 거죠. ‘송해가 우리 마을에 살았나’ 하면서 다 놀라워해요(웃음). 그렇게 객석 반응이 좋으면 길길이 날뛰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아지죠. 근데 ‘이건 정말 대박이다’ 생각하고 멘트를 딱 했는데, 반응이 별로면 등허리에서 땀이 나요. (한숨을 쉬더니) 아, 정말 아직도 무대에서 진땀 날 때가 많아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지 올해로 29년째.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등 한민족이 뿌리내린 지역 중 송해 발길이 안 닿은 곳은 거의 없다. 심지어 2003년엔 북한 평양 모란봉에서 ‘평양노래자랑’을 열기도 했으니까.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남아 있나요?”

“중국을 좀 더 다녀봤으면 해요. 예전에 중국 어떤 지역에 갔더니 동포들이 녹화하는 걸 직접 보려고 중국 대륙 끝에서 3박4일 걸려서 기차 타고 오더라고요. 대륙 끝에서 끝까지, 쭉 가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고향(황해도 재령)에서도 ‘전국노래자랑’을 열고 싶으실 텐데.”

“그렇죠.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면 고향 가서 ‘노래자랑’ 열고 싶다고 말해왔죠. 고향에 연백평야가 있는데, (호남 지역 곡창지대인) 김제평야하고도 안 바꾼다고 할 만큼 기름진 땅이에요. 거기 쌀로 밥을 지으면 밥에 파리가 못 앉아요. 왜냐면 밥이 기름져서 파리가 미끄러지거든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