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제주지회 목회자 ‘나눔결연’지 몽골 아르항가이에 가다
입력 2012-09-16 20:44
“네가 블레크구나” “후원자님∼ 반가워요”
제주 목회자들의 훈훈한 사랑이 몽골 아르항가이 작은 마을에 아름답게 펼쳐졌다. 월드비전 제주지회 소속 목회자 7명은 지난 5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버스로 11시간을 달려야 하는 오지마을을 찾았다. 월드비전 CDP(지역개발사업)사업장을 둘러보고 지원 내용을 확인하는 일정이었다. 몽골의 시골 환경은 열악했다. 끝없이 펼쳐진 메마른 땅과 일부 초원지대에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소와 양, 염소를 키우는 목축 뿐이었다. 다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에 부모들은 자녀들을 놔둔 채 도시로 떠나가고 남겨진 아이들은 결손가정이 되거나 교육 기회를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 어린이들과 결연을 맺고 매달 3만5000원씩을 지원하는 ‘나눔결연’은 한 어린이의 삶, 더 나아가 한 인생을 바꾸어 주는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문크 제제(여·15)가 사는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할머니 집에 살다 이제 친척집에 머문다는 문크는 그동안의 마음고생 탓인지 얼굴빛이 내내 어두웠다. 더구나 선천적으로 목젖이 두개로 나눠져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 때문에 친구들에게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음에도 병원진료 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문크를 위해 김철규(49·서귀포성결교회)목사가 성큼 도움을 자원하고 나섰다.
“문크 양이 울란바토르 큰 병원에서 진찰 후 수술을 받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몽골에서 어렵다면 한국에 초청해 수술을 받도록 돕겠습니다.”
문크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번졌다. 평생을 고통 가운데 지내야 했을 문크에게는 김 목사와의 만남이야말로 그동안 기도해 온 응답이 아닐 수 없었다. 김 목사는 “문크 제제가 수술을 잘 받을 수 있게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모금도 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찾은 신케르 지역 초중등학교는 말이 학교지 제반 교육시설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학교에 다녀야 할 5000여명의 마을 아동 중 1200명 정도만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몰려드는 학생은 많지만 교육자재 및 시설이 너무 부족했다. 1959년에 지어진 학교는 모든 것이 낡았다. 안내받은 교무실도 큰 원탁에 의자만 댕그러니 놓여 있었다. 척솔로마(46) 주임교사는 “교무실 조차 컴퓨터가 한 대도 없으니 어떻게 최신 정보를 얻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창진(48·제주 신광교회)목사가 나섰다.
“부족하지만 제가 이곳에 최신 컴퓨터를 한대 사주고 가겠습니다.”
고 목사는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앞으로 추수감사절 헌금을 몽골 지원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네가 블레크 사이칸이구나!”
사진 속 앳된 모습보다 훨씬 더 많이 자란 아이였다. 부모가 제 자식을 알아보듯 박경식(43·제주 대정교회) 목사는 자신의 후원아동을 만나자마자 기쁨의 눈물을 글썽거렸다. 블레크 역시 편지로만 받았던 사진 속의 한국후원자를 만나자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블레크는 그 동안 간직해오고 있던 박 목사가 보낸 편지와 사진들을 꺼내 보여주며 수줍게 웃었다.
블레크는 “후원자님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뻐요. 열심히 노력해 훌륭한 씨름선수가 될 거에요”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후원 아동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을 직접 보니 대견하고 내가 보낸 사진과 편지를 내밀 때 가슴이 뭉클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목사는 이날 블레크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한 아름의 과자와 집에서 키울 양 한 마리를 사서 선물했다.
#아르항가이 중심가에 위치한 어느 폐건물. 어둡고 침침한 건물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드디어 작은 방이 하나 나온다. 오톤자야가 언니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이다. 올해로 6살인 오톤자야는 13개의 치아에 모두 충치가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고 정기적인 치과 진료를 받을 수도 없다. 거리에서 만두를 팔아 지내는 이들 가족은 매달 내야하는 10만원의 집세가 큰 부담이다. 이들의 결연후원자가 없다는 말에 오성범(49·제주 감산교회) 목사가 후원을 자청했다. 오 목사는 “한국에서 돌아가 거리공연을 통해 모금활동을 펼치겠다”며 즉석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이며 이들을 격려했다.
#이번 일정 속에서 황호민(44·제주 구좌제일교회)목사도 낡고 작은 게르에서 난자드(10)를 매달 후원하기로 했다. 울퉁불퉁한 대평원을 40분을 달려 만난 난자드는 8살인 여동생과 15살 된 형, 부모님,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황 목사는 “자녀가 둘 있는데 난자드가 셋째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자주 연락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몽골아동 후원에 동참하고 있는 동남교회 제종원(43·제주 동남교회) 목사도 “몽골을 와서 보니 어린 시절 낙후됐던 한국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몽골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도울 방법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몽골방문 일정을 마련한 월드비전 제주지부 김관호(50)지부장은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을 사랑으로 거두고 격려해 준 제주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앞으로 제주지역 교회들과 월드비전이 협력해 몽골후원과 선교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한국 월드비전은 지난 2005년부터 이곳 아르항가이 아동 3000여명과 결연해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직 이곳에서 요청하는 결연숫자를 다 채우진 못하지만 보건지원사업과 소득증대사업, 교육지원사업을 병행해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르항가이에서는 ‘코리아 넘버 원’이란 말을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아르항가이(몽골)=글·사진 김무정 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