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영적 무기력을 느끼는 당신에게
입력 2012-09-16 17:56
‘학습된 무기력’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파블로프의 개’로부터 나온 심리학 용어인데, 심리학자들이 하루는 개를 묶어두고 전기로 충격을 주었다. 순간 개는 도망치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개는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도망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를 풀어놓고서 같은 실험을 했다. 재미있는 현상은 개가 얼마든지 달아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개는 ‘무기력’을 배우고야 말았다. 무기력이란 학습되는 것이고, 그 결과 무기력에 익숙해지고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버리게 된다.
영적인 무기력함도 이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무기력함이 힘들고 불편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익숙해져 버린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무기력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다.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다. 마치 도망칠 수 있어도 도망치지 않는 무기력한 개처럼 말이다. 영적 무기력이 얼마나 무서운가.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향하여 질문하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나는 이 구절을 대하면서 약간 웃은 적이 있다. ‘아니 이걸 물어서 뭐해? 그 오랜 세월 나으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의사가 환자를 보면서 ‘혹시 낫고 싶습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환자는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
그는 38년간 그 무기력한 자리에 누워있으면서 이미 무기력함에 익숙해져 버렸고 학습되어 버렸다. 몸만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무기력함에 찌들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바싹 말라 버린 씨앗처럼 일어날 의욕의 불씨조차 꺼져버린 영혼이다. 도망갈 수 있어도 도망치지 않는 무기력한 개와 비슷했다. 예수님은 그의 비참함을 보셨다.
영적 무기력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할 수 있겠는가? 영적 무기력은 가장 무서운 질병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38년 된 병자의 몸을 고치기 전에 그의 무기력해진 영혼, 말라버린 의욕의 불씨부터 일으키기를 원하신 것이다.
이런 편지를 본 적이 있다. “목사님, 저는 아무 의욕이 없습니다. 저의 집은 엉망으로 어질어져 있고, 제 꼴은 제가 보기에도 끔찍합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도와주어야 하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암 덩어리를 발견하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수술을 해야 하는 것처럼 당신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영적 무기력증은 암 덩어리만큼 무서운 병입니다. 시간을 끌지 마십시오. 지금 즉시 하나님께 손을 내미십시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나마 불편함을 느낄 때, 이때가 기회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