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법’ 피하려 한국서 위장거래?… 이란중앙銀서 1조원대 인출
입력 2012-09-14 19:24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이성희)는 국내 무역업체 A사가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명의 계좌에서 1조원대 돈을 위장 거래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미국 국적의 A사 대표 Z씨(73)를 출국금지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Z씨는 2009년 한국에 자본금 3억원의 K무역·투자자문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지난해 A사로 명칭을 바꾸고 관계당국에 “두바이산 대리석을 수입해 이란에 신전 건축 용도로 수출하는 방식의 중계무역을 하겠다”고 신고했다. Z씨가 직접 이탈리아 대리석 판매업체 총판인 M사(두바이 소재)와 대리석 수입계약을, 이란의 T사와 같은 양의 대리석 수출계약을 맺고 자금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자금결제는 이란 업체가 자국 은행에 자금을 입금하면 Z씨가 국내에 있는 이란중앙은행 명의 계좌에서 돈을 받아 중계료를 제하고 M사에 송금하는 형태다. 미국의 대이란제재법을 피하기 위해 한국과 이란이 맺은 원화결제시스템을 이용한 것이다.
Z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2∼7월 50여 차례에 걸쳐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대금 결제 계좌에서 1조900억원을 인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돈은 기업은행의 다른 계좌로 이체된 후 곧바로 해외 5∼6개국 계좌로 송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Z씨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실제로는 물품거래를 하지 않고 위장거래로 자금만 빼돌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M사와 T사 사이에 실제 대리석 거래가 없이 자금만 옮겨졌다는 뜻이다. 검찰은 전날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한국은행에서 A사의 수출입 관련 서류를 제출받았다. 검찰은 자금이 결제되는 과정에서 기업은행과 정부의 승인 과정 문제점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은 수사 초기단계라 혐의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Z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전략물자관리원과 한국은행에 대리석 수출입 관련 서류를 다 제출했고, 기업은행에서 인출한 돈은 M사에 모두 송금했다”고 해명했다. Z씨는 조세회피 지역인 브리티시버진아인랜드 소재 글로벌 자산관리회사에서 투자자문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