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이 인터넷 세상에서 공론화되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일단 일을 벌인 장소가 공공장소이거나 저지른 일이 모두의 공분을 살 만한 일이어야 한다. 누군가가 이를 목격한 뒤 증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다. 동영상이 첨부돼 있다면 금상첨화다. 공분을 일으키거나 자극적인 언동을 저질러 고발 글의 조회수가 수만건 정도 되면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쯤 되면 처음 글을 올린 인터넷 게시판 또는 SNS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녀)의 행위가 퍼진다.
지난 7월 남의 식당 앞에 차를 대놓고 화분을 훔쳐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혀 공개된 ‘용인 화분녀’는 인터넷에 동영상이 오른 지 20시간 만에 견디지 못하고 자수했다. 경적을 울린다며 시비를 벌인 끝에 차량을 뒤쫓아 오토바이 헬멧으로 후사경을 깨뜨린 ‘서부간선 헬멧 무법남’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뒤 이틀 만에 검거됐다. ○○남(녀)은 기술 발달이 부른 고발정신의 확산을 통해 몰상식한 행동을 자제시킨다는 긍정적 측면을 지녔다. 불의를 보고만 있지 않고, 불편을 참고만 있지 않는 시민들의 고발정신이 첨단기술과 함께 표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원 노출로 인해 죄과보다 더 큰 ‘여론 재판’을 당하게 되는 디지털 시대의 인권 침해라는 부정적 여론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여대생 A씨는 2009년 11월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 키 작은 남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루저녀’라는 별명을 얻고 ‘신상털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녀)들은 미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네티즌들의 분통을 터뜨린다. 2010년 휴지를 치우지 않았다며 대학 캠퍼스 내에서 중년의 환경미화원에게 욕설을 퍼부은 ‘경희대 패륜녀’와 지난해 6월 다리를 꼬고 앉은 것을 나무라는 노인에게 주먹을 들이대며 패악질을 벌인 ‘1호선 막말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선정수 기자
[디지털시대 여론재판] 고발정신·첨단기술 합작품
입력 2012-09-14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