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살만 루시디

입력 2012-09-14 18:26

살만 루시디가 소설 ‘악마의 시’를 출간한 것은 1988년이었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다. 옛 식민지에서 태어나 본토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성장한 그에게 영국 내 이민자들의 꿈과 좌절은 언제나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 고민을 초현실주의적 방식으로 풀어낸 소설이 악마의 시다. 그에게 글은 태어난 곳과 자란 곳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는 도구였다. 악마의 시는 문단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국 내 외국인 차별을 비판하고, 이후 전 세계에서 벌어질 인종갈등을 예견했다는 찬사도 받았다. 첫 직장인 광고회사 오길비앤드매더에서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광고문구 ‘그것으로 충분합니다(That’ll do nicely)’를 만들었을 만큼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악마의 시는 이슬람 국가들의 공분을 샀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코란의 일부를 악마가 전한 글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89년 이란의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란, 파키스탄 성직자들이 그의 목에 내건 현상금은 130억원이었다. 91년에는 일본 번역가가 잔인하게 살해됐고,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번역가도 습격을 받았다. 루시디는 영국 경찰의 보호 아래 10여년간 숨어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은둔생활을 끝낸 루시디는 세계에서 언론을 가장 많이 타는 소설가가 됐다.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교수로 부임해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23세 연하인 모델 출신 방송인과 세 번째 결혼을 하더니 3년 만에 이혼하고 36세 어린 작가와 열애를 시작했다.

지난 미국 대선 때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선 세라 페일린을 비난했고 이번에는 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가 만든 환경단체에 참여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을 두둔했다.

루시디가 살해위협을 받을 때 전 세계 문인들이 나선 것은 표현과 창작의 자유 때문이었다. 그것이 작가의 정치·종교적 신념을 작품과 구분하는 서구의 문화적 전통이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는 다르다. 이번에는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이 문제다. 두 문화의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