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길 잃고 양분된 진보정치

입력 2012-09-14 18:24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지난해 12월 5일 통합진보당을 공식 출범시킬 때만 해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위해선 진보정당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기대가 표출됐다.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진보정당 사상 가장 많은 13석을 얻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창당 9개월여 만에 통진당이 신·구당권파 간 싸움 끝에 양분됐다.

강기갑 전 대표의 탈당에 이어 신당권파의 탈당 행렬은 그제 절정에 달했다. 심상정 노회찬 강동원 의원과 유시민 조준호 전 공동대표가 탈당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진보정당 대표를 역임한 9명 가운데 이정희 전 대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통진당 당적을 버린 셈이다. 현역 국회의원 비율은 7(신당권파) 대 6(구당권파)이 됐다. 인천과 광주·전남 등 지방에서도 당원들의 탈당이 잇따랐다. 최근 탈당한 당원만 2만여명이다. 이에 따라 주체사상파 계열의 구당권파만 남게 된 통진당은 사실상 ‘식물 정당’으로 전락했다.

이 지경이 된 주된 이유는 구당권파의 아집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 등 소위 NL(민족해방)계의 경기동부연합은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국고 횡령 혐의까지 받고 있음에도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동원했다. ‘셀프 제명’으로 당적을 이탈한 신당권파 비례대표 4명에 대해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반성하지 않고, 기득권 유지에 여념이 없는 구당권파를 쫓아내려던 신당권파가 편법까지 동원해 스스로 당을 떠난 이유다.

그럼에도 구당권파는 염치없이 이정희 전 대표를 차기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대선에 후보를 내야 10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반면 신당권파는 16일 전체회의를 갖고 신당 창당 작업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이렇듯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 앞에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이 2개 나타날 전망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미 기대를 접었을 것이다. 진보가 자초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