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전성시대] “평생 교육 시대… 일하면서 꿈 펼칠거예요”

입력 2012-09-14 19:08


‘현장 맞춤형 인재’ 직장인 2人

특성화고가 뜨고 있다. 딱딱한 교재보다 현장 중심의 맞춤형 교육방식이 ‘열린 채용’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대학생들이 장기화된 경기침체의 현실을 반영하는 그림자라면 특성화고 출신들의 약진은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확신 없이 대학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꿈을 찾고 싶었어요.”(이평화·18)

“군대로 치면 장교가 필요한 곳도 있고 부사관이 필요한 곳도 있고 사병도 필요한데, 우리는 전부 장교만 되려고 해요.”(민태현·19)

지난 11일 서울 신천동 한 카페에서 만난 10대 직장인 새내기들의 답은 ‘돌직구’였다. 70%를 넘는 한국의 높은 대학진학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아직은 어색한 나이다. 두 사람은 모두 지난 2월 실무중심의 맞춤형 교육에 특화된 학교,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성동글로벌경영고를 졸업한 이양은 삼성엔지니어링 정유사업본부에서, 대동세무고를 졸업한 민군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재무팀에서 일한다.

지난해 일부 은행과 공사에서 고졸 출신을 채용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열린 고용’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특성화고가 주목받고 있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2000년대 계속 하락 추세에 있었지만 2010년 19.2%로 바닥을 찍은 이후 지난해 25.9%로 상승했고, 올해는 38.3%로 껑충 뛰어올랐다.

민군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대학에 가는 학생 비율이 더 높았는데 올해는 취업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양도 “요즘이 (우리 특성화고 출신들의) 황금시대인 것 같다”고 맞장구쳤다.

대졸자가 넘쳐나는 한국사회에서 ‘고졸’이라는 타이틀은 소수의 대열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대학졸업장에 목매는 이유다. 과거처럼 대학 졸업장이 안정된 직장을 의미하던 시대가 지났어도 학력을 통한 신분상승의 욕구는 뿌리 깊게 남아있다.

“부모님 몰래 특성화고에 원서 넣었어요.”(웃음) 이양의 부모 역시 고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직 자신의 꿈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민군도 “공고를 나오신 아버지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면서 “앞으로는 평생교육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대학은 나중에 가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어 취업을 선택했다”고 했다. 내심 진학을 원했던 부모님들도 이들이 어엿한 직장에 취업한 뒤에는 주변에 자랑하기 바쁘다고 한다. 남들보다 먼저 취직해 첫 월급날 두둑이 드린 용돈 덕도 봤다.

특성화고의 장점은 입사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양은 “학교 다니는 3년 동안 상품기획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에서 시장조사나 발표 같은 수행평가가 많았다”면서 “자기 소개할 때도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웃음기 띤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다 표정이 어두워진 건 대학 간 친구들 얘기를 묻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긍정적인 두 사람에게도 고졸 취업 선택에 따른 부담은 남아있었다. 민군은 “친구들이 공감을 못한다. 서로 말이 안 통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양은 “대학생 친구를 만나면 약간 어색할 때도 있다”면서 “함께 어울리다보면 어느 순간 대학생 자체가 부러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생활도 첫 마음처럼 쉽진 않았다. 고졸의 벽을 느끼는 순간이 올 때도 많았다. 이양은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은 남녀 얘기를 할 때도 물리학을 인용해가며 얘기하는데, 지식 차가 느껴져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계발에 대한 생각은 더욱 커졌다. 민군은 “우리 회사는 해외조직망이 많아 외국어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사내 중국어 강좌를 신청해 듣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 참여도 면에서 고졸자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제한도 느껴진다고 했다. 민군은 “해당 국가에 대한 조사라든지 통계업무도 하고 싶은데 고졸과 대졸이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고졸 채용은 늘리고 있지만 전문성을 키워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 매뉴얼은 갖추지 못한 탓이다. 민군은 “대졸자 이상으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열심히 노력하겠다”면서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글=백상진 기자,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