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접경 훈춘을 가다… 3개 국어 간판 뒤엉켜 ‘국경도시’ 실감

입력 2012-09-13 15:51


“훈춘(琿春)시 팡촨(防川)은 두만강과 닿아있으며 여기서부터 동해까지는 불과 15㎞밖에 안 된다. 훈춘에서 가까운 북한과 러시아에는 수많은 부동항이 있다.”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훈춘시 당국이 훈춘을 소개한 공식자료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이 ‘태평양 출구’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다. 훈춘 취안허(圈河)세관에서 북한 나진항까지는 48㎞, 훈춘세관에서 러시아 포시에트항까지는 42㎞ 각각 떨어져 있다.

지난 11일 오후 훈춘 시내 징허제(靖和街) 부근에서는 러시아인 남녀 대여섯명이 쇼핑백을 손에 든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훈춘에서 의류, 생활용품 등을 사가기 위해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다.

시내 간판은 한글, 한자, 러시아어 3개 국어로 쓰여 있다. 한글과 한자가 병기돼 있는 옌볜조선족자치주 내 다른 도시와는 달리 러시아어가 추가됐다. 이곳이 북·중·러 3국이 접한 국경 도시임을 실감케 했다.

중국이 ‘제강추하이(借港出海·항구를 빌려 바다로 나간다)’의 꿈에 한층 다가서고 있다. 두만강 삼각주(훈춘-나진-포시에트)의 꼭짓점인 훈춘을 통해서다.

“보다시피 지금 훈춘의 인프라가 많이 부족합니다. 현재 인구가 25만인데 50만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곧 구축할 겁니다.”

훈춘시 관계자는 이를 위해 중앙정부가 올 연말까지 150억 위안(약 2조6743억원)을 훈춘에 지원하게 된다고 밝혔다. 더욱이 2015년까지는 1200억 위안(약 21조3948억원)이 중앙정부로부터 투입될 계획이다.

국무원은 이에 앞선 지난 4월 훈춘에 있는 모든 경제개발구를 묶어 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했다. 변경도시에 있는 유일한 국가급 경제특구인 이 시범구는 90㎢에 달한다. 이 시범구에 투자하는 기업은 세제 금융상 혜택을 받게 되며 신에너지, 신소재, 금융 등 특정 산업을 우대하는 것까지 모두 9종류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 시범구 내에 면적 12㎢에 달하는 국제물류기지가 자리잡게 된다. 지난 10일 기공식을 가진 포스코 국제물류단지(1.5㎢)도 바로 이 기지 내에 위치해 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훈춘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북한 나진항을 이용할 경우 물류의 일대 혁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동북지역 화물을 나진항을 통해 중국 남부로 운송할 경우 엄청난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나진항은 중국에게는 일본,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최단거리에 위치한 항구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곧 훈춘∼나진 고속도로를 착공한다는 계획이지만 국제적인 대북 제재 때문에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이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훈우고속도로(훈춘∼네이멍구자치구 우란하오터)를 통해 중국 대륙 모든 곳이 나진과 연결된다.

더욱이 2014년 지린∼둔화(敦化)∼안투(安圖)∼옌지(延吉)∼투먼(圖們)∼훈춘 고속철 공사가 마무리되면 중국 대부분 지방에서 24시간 내에 수송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 나진항을 거쳐 한국, 일본, 미국 등으로 해운이 뻗어나갈 수 있다.

훈춘=글·사진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