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과거사에 발목잡힌 박근혜] 票보다 아버지?

입력 2012-09-14 00:26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13일 인혁당 발언 논란이 확산되자 이 사건 피해자 유가족들을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한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가족에 대한 사과를 놓고 논란이 많다는 지적에 “수차례 (유신의)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딸로서 죄송스럽다고 얘기를 해왔고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오히려 더욱더 민주화에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게 저의 생각이었다. 그런 것이 사과가 아니라면 어떻게 되느냐”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가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라는 단어를 쓴 것은 처음이다.

박 후보는 강원도 홍천에서 새누리당 당원협의회 사무국장 연수회 참석에 앞서 ‘인혁당 유가족을 만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분들(유가족)이 동의하시면 뵙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이날 유가족 방문 의사를 밝혔지만 과거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좀더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됐던 것처럼 입장 변화 없는 방문 추진은 무위로 끝날 수도 있다. 때문에 당에서는 늦어도 추석 전 박 후보가 직접 입장을 밝히리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추석 ‘밥상 민심’에서 적어도 과거사 논란이 확산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당의 절박함이 반영돼 있다.

그럼에도 박 후보가 입장 표명을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간 여러 차례 제기됐던 박 후보의 ‘과거사 입장 변화’ 전망은 번번이 빗나갔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직결된 과거사 문제는 결국 박 후보 본인의 몫이다. 전날 홍일표 대변인의 사과를 박 후보가 곧바로 뒤집어버린 상황에서 누가 박 후보에게 전향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당 관계자는 “섣불리 입장 변화 기대감만 잔뜩 키웠다가는 더 큰 혼선을 부를 수 있고, 또 지금처럼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수준의 입장이라면 악화된 여론을 되돌리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박 후보는 정치 입문 후 줄곧 박 전 대통령과의 강한 일체감을 드러내 왔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아버지가 못다 한 뜻을 펼치는 데 조그만 힘을 바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99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시대를 비판하자 당시 한나라당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며 탈당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그가 과거사 입장을 급격히 바꿀 경우 “여론에 떠밀렸다” “표를 의식했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 있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당은 어떻게든 후보를 압박해 바꿔보려 하는데 후보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은 보도 자료를 내고 “박 후보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그리고 ‘1975년 4월 8일 인혁당재건위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면 그에 따라 만남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