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멀티플렉스

입력 2012-09-13 18:45

한 건물 안에 10개 이상의 상영관과 대형주차장·식당·카페·쇼핑타운, 각종 전시장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복합상영관은 ‘영화의 나라’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1970년대 이후 비디오에 관객을 빼앗긴 미국 극장들이 불황 타개책으로 개발한 방식이다. 차를 타고 가 식사와 쇼핑은 물론 각종 전시회도 관람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적인 사고에 기초를 두고 있다.

국내 3대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롯데시네마, CGV, 메가박스를 찾아가보면 이곳저곳에서 소비를 유혹한다. 영화관 안에 들고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앞에서 파는 팝콘이나 아이스크림 콜라 등 음료수, 치킨 등을 구입해야 한다. 보통 영화 관람료보다 이 돈이 더 들어간다. 이 같은 부대사업도 대개 재벌의 친·인척이 운영한다고 말썽이 된 적이 있었다.

상영관이 많다보니 작품성에 관계없이 관객이 몰려 돈이 된다 싶으면 여러 곳에서 같은 영화를 돌린다.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작가주의적 성향의 예술영화나 인디영화는 설 곳이 없어 찬밥 신세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최근 상업주의에 물든 국내 영화계를 꼬집은 그대로다.

영화가 원래 자본주의의 속성을 그대로 갖고 있기에 멀티플렉스의 이런 행태가 반드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상업영화란 것이 대개 흥행을 생각해 시나리오와 감독과 배우 등을 선택하는 것일진대, 오로지 빛나는 작가정신에 투철한 저예산 영화가 같은 대우를 받고자 하는 것이 언감생심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 저예산 영화 애호가들끼리 별도의 상영관을 만들었거나 만들 예정으로 있다.

거액이 들어간 영화라고 상업적으로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란 사람마다 선호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돈 많이 들어갔다고 성공하지는 않는다. 국내 최고 영화 투자·배급사의 100억원 넘게 들인 영화가 잇따라 관객에게 딱지 맞은 현실을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많은 돈을 투자해도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데 실패하면 스크린을 오래 장악하고 있어도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복합상영관들도 이제 다양한 관객 확보를 위해 재주 있고 유망한 젊은이들의 독립 저예산 영화나 실험성 높은 작품에 과감히 문호를 개방하면 어떨까. 당장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문화의 다양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마니아들을 배려하라는 말이다. 극단적인 이윤추구에 제동을 걸어 살아남은 것이 자본주의란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