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한국인의 자격
입력 2012-09-13 18:43
한국인이 되기 위해 보는 시험이 있다.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보는 귀화시험이다. 시험에는 초등학교 4∼6학년 수준의 한국어와 일반상식 문제가 출제되는데 한국사 문제가 꽤 비중 있게 나온다.
외국인이 삼국사기 저자부터 살수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군, 장영실이 발명한 물시계의 이름까지 일일이 외우기는 힘들 것 같다. 사실 언어, 상식과 달리 역사는 몰라도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외국인에게 우리 역사를 얼마나 아는지 묻는 것일까.
개인이 살아온 과거의 순간순간이 모여 인생이란 이름으로 그의 전부를 말하듯이 이 땅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이어온 반만년 역사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모습으로 세계 속에 서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 역사를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우리 스스로 잘 알기에 시험이라는 형식을 빌려 그들에게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묻고 있는 우리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 2009년 선택과목이 됐던 국사가 2010년 독도 문제가 첨예화되자 다시 필수과목으로 전환됐고 올해부터는 국사수업을 3년간 85시간 받게 됐다. 하지만 2005년 사회탐구영역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바뀐 뒤 서울대가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선정하자 상위권 학생이 국사를 택하면서 많은 중·하위권 학생은 보다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국사 선택을 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의무교육을 마치기 위해 한 학기에 몰아서 끝내버리는 학교도 있고 내신 관리 차원에서 형식적 수업만 진행하는 곳도 있다.
2014년부터 선택과목이 2과목으로 줄어들면 자그마치 반만년 역사를 외워야 하는 이 암기과목은 더 외면당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공부하지 않는 필수과목이 돼 언젠가는 한국인이 한국인 자격시험을 봐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서양사학자 정기문 군산대 교수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과거라는 주춧돌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존재이다. 주춧돌이 무너지면 집이 무너지듯이 과거가 무너지면 인간도 무너진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과 현재 자신이 누리는 여러 권리의 정당성을 과거에서 끌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은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과거가 없는 그는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의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