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와 젊은날 열정… 김윤식 에세이 ‘내가 읽고 만난 일본’

입력 2012-09-13 18:08


원로 비평가 김윤식(76·서울대 명예교수)을 떠올리는 동시에 춘원 이광수(1892∼1950)가 떠오르는 것은 그의 대표적 저작인 ‘이광수와 그의 시대’(1986) 때문이다. 김윤식은 이광수라는 숫돌에 학자적 양심과 젊은 시절의 열정을 갈아 날을 벼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왜 이광수이어야 했을까. 김윤식은 자전적 에세이 ‘내가 읽고 만난 일본’(그린비)에서 한국 근대의 천재 이광수를 왜 붙들어야 했는지를 구구절절 밝히고 있다.

1970년, 서울대 국문과 조교수였던 34세의 김윤식은 미국 하버드대 옌칭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아 일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에 외국인연구원 신분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교정 분위기는 살벌했다. 대학 구내에는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전공투)의 붉은 깃발이 난무했고 점심시간이면 교직원들조차 구호를 외치며 캠퍼스를 뛰어다녔다. 아침이면 대학 정문 앞에서 장사치들이 데모용 헬멧과 죽창을 팔았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대한민국 교육공무원 김윤식은 이런 문화충격으로 인해 방향감각을 잃고 만다. 1년여를 체류하는 동안 그는 이광수의 와세다 고등전문부 성적표와 ‘백금학보(白金學報)’에 실린 이광수의 처녀작 ‘사랑인가’를 찾아냈을 뿐, 오히려 헝가리 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매료됐다.

두 번째 도일(渡日)은 광주사태 와중이던 1980년에 이루어졌다. “나는 이 중년의 한복 입은 사내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손에 들린 무기에서 왔다. 달랑 붓 한 자루뿐이었던 것. 이 가장 부드럽고 연약한 붓 한 자루로, 5월 광주와 DMZ 속을 헤매어야 한다는 것. 빚 갚기란 이 붓으로만 가능하다는 것. 이 점을 그는 내게 가르쳤다. 다듬어 말해 그것은 ‘민족’에 대한 빚 갚음이 아닐 수 없었다.”(702쪽)

5월의 광주사태 속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비평이라는 무기는 더 날카롭게 벼려야겠다고 한 것은 붓 한 자루 외에 다른 것을 가질 수 없었던 식민지 조선의 천재 이광수였다. 이광수가 11세에 천애고아가 됐듯 김윤식 역시 학문적 고아의식으로 무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에 남아 있는 이광수의 행적과 자료를 수집, 탐구한 끝에 우리 국문학사에서 독립적인 전기비평의 전범으로 꼽히는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집필할 수 있었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는 이제 희수에 이른 김윤식이 너무도 오랫동안 붙들려 있던 ‘이광수와 그의 시대’에서 마침내 벗어나 1인칭 관점으로 증언하는 ‘이광수와 나의 시대’에 다름 아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