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재난=디스토피아’ 고정관념 뒤집기 ‘이 폐허를 응시하라’

입력 2012-09-13 17:47


이 폐허를 응시하라/레베카 솔닛/펜타그램

통상 재난하면 약탈과 파괴, 살인과 폭동, 상실과 고통, 그리고 비애로 가득한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된다. 과연 그뿐일까.

미국의 진보적 저널리스트 레베카 솔닛은 대재난에 대한 심층 탐구와 무수한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고정관념과 달리 대참사의 한 가운데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강렬한 이타주의와 연대의식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보자.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은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비행기 테러로 일순간 잿더미가 됐다. 그곳에서도 연대의 꽃은 피었다. 당시 시내 가판대에서 신문을 팔던 60대 시각 장애인 삼브라노는 생전 처음 본 두 여인이 부축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지 않았다면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다. 위기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일면식이 없어도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서로의 손을 잡았다. 전국 각지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집결했다. 유니온 광장은 슬픔을 나누는 토론 광장이 됐다. 신자유주의 경쟁이 판치는 월가가 독창적인 협력과 상호부조의 문화로 대체됐던 것이다.

1906년 4월 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1917년 12월 6일 캐나다 핼리팩스 항구에서 발생한 무기수송선 폭발, 1985년 9월 19일 멕시코 멕시코시티를 뒤흔든 대지진, 2005년 8월 29일 미국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참사 등 책에서 다룬 4가지 대재난의 현장에서도 같은 현상은 되풀이됐다.

“거품처럼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쁨이 있음이 감지된다. 우리의 상실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이런 분위기다. 모두가 당신의 친구가 되고, 당신은 또한 모두의 친구가 되었다. 고립된 개인적 자아는 죽고, 사회적 자아가 군림했다.”(57쪽)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지역 신문 ‘뷸러틴’에 실린 기사는 재난 후 자생적으로 싹이 튼 이런 ‘재난 유토피아’가 있음을 증언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재난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는 걸까. 저자는 ‘엘리트 패닉’, 즉 관료들이 가지는 공포가 화를 더 키운다고 주장한다. 재난 현장의 사람들이 폭도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후 재난 대처 훈련을 실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추가 테러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조장했다.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 태풍 때도 연방정부는 구조보다는 통제에 주안점을 두면서 피해자를 고립시켰다.

저자는 풍부한 인터뷰와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썼고, 재난사회학 분야 이론으로 주장에 힘을 실었다. 논문과 에세이, 르포가 어우러진 독특한 글쓰기인 셈이다.

재난이 닥치지 않은 우리의 일상에도 이 책은 미덕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에 답이 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생활 그 자체가 재난인 시대다. 경제위기는 가혹하지만 분권화와 민주화, 시민의 참여, 새로운 조직들과 대응방식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존을 위해 이런 것들이 더 필요해질 수 있다.”(457∼458쪽)

저자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참여하는 등 사회 이슈에 대해 적극 발언해 왔다. 10여종의 저서 가운데 ‘걷기의 역사’ 등 다수의 책이 국내에 소개됐다. 정해영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