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닮은 작품 만든다면 제작비 모금할 것” 김기덕 감독 은사 윤혜자씨 부부 인터뷰

입력 2012-09-13 03:13


“제자 김기덕 감독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난 10일 신문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김기덕(52) 감독이 초등학교 졸업 후 다녔던 농업학교(경기도 고양시 삼애실업학교)에서 2년 동안 담임교사로 국어과목을 가르쳤던 윤혜자(77)씨의 남편 정건모(75)씨였다. 정씨 역시 이 학교의 교감으로 윤리과목을 가르쳤다.

이들은 10일자 국민일보 1면 ‘용서·구원의 메시지, 세계를 사로잡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 감독의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을 접했다. 집 전화도 TV도 없는 이 부부에게 국민일보는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였다.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중학교 시절 김기덕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는 것이다.

김 감독의 2, 3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윤씨는 최근 네 차례 척추수술을 받은 후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자신의 늙고 힘든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한사코 사진촬영을 거절한 윤씨는 목소리만은 또랑또랑했다. 그는 “기덕이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도 몰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기덕이 뭐 해?’ 하면 그리던 그림을 싹 감추곤 했다. 남자답게 오기가 있는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윤씨는 “기덕이가 이렇게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학교를 마친 후 이 부부와 김 감독과의 연락은 끊겼다.

유엔평화봉사재단 유엔평화본부한반도유치위원회 총재인 정씨는 “영화 ‘사마리아’나 ‘피에타’는 김 감독의 기독교 종교관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인 것 같다”며 “농업학교가 지금은 없어진데다 정식 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해 기덕이가 혹시 창피해할 수도 있는데 언젠가는 학교를 다시 세우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삼애실업학교는 1969년 고(故) 최순옥 여사가 사재를 털어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설립한 농업전문 학교다. 하지만 76년 정부 시책에 의해 폐교됐고, 이후 학교 부지 6만평은 연세대에 기증됐다.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삼애교회’가 세워졌다.

정씨는 “기덕이에게 ‘피에타’ 그림을 선물하고 싶다. ‘피에타’ 제작비 1억원도 다 빚이라는데 지인들과 함께 이를 갚아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 영화를 위한 제작비도 모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닮은 작품을 만든다면 스승으로서 무엇을 아끼겠느냐”고 말했다.

윤씨도 “기덕이가 끝까지 겸손하게 앞으로의 작품도 성공하길 바란다. 혹시 우리를 기억한다면 한 번 만나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가 똑똑해서 상을 받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감독으로 쓰게 한 것이다. 열등감이나 반항심을 극복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길 기도하겠다”고 김 감독에게 전했다. 이 부부는 이런 얘기조차 김 감독에게 혹시 누가 될까 걱정했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등록금을 안 내도 됐던 이 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서울 청계천 공장, 해병대 등을 거쳐 총회신학교에 입학했다가 그림에 흥미를 느껴 프랑스로 건너갔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