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축구 기대주 통일 향해 달린다… 11년전 탈북, ‘미래의 태극전사’ 꿈꾸는 21세 청년의 도전
입력 2012-09-12 22:17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대표급 팀의 감독이 되고 싶어요. 히딩크 감독님이 제 롤모델이죠.” 그의 꿈은 북한에서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다.
실명 공개를 꺼린 그는 탈북자다. 나이는 21세. 탈북자 단체인 FNK(통일미래연대) 축구단의 주전 공격수이자 코치다. 지난 9일 서울 월계4동 인덕대학교 인조잔디구장에서 그를 만나 꿈을 들어 봤다.
그가 탈북한 건 11년 전이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12월의 어느 날. 평안남도의 한 시골 마을에 살던 그는 엄마와 함께 3년 전 숨진 아버지의 지인을 따라 먼 길을 나섰다. 엄마는 압록강을 눈앞에 두고 산을 넘다가 인민군에 잡혀갔다. 졸지에 혼자가 된 그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몇 명의 북한 사람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열 살짜리 꼬마에게 한국 생활은 낯설고 힘겨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것 같았어요. 모든 걸 새로 배워야 했지요. 가장 힘든 건 학교생활이었어요. 친구들이 제 말투가 이상하다고 놀렸거든요.”
그가 빗나가지 않게 잡아 준 건 축구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갔습니다. 맘껏 공을 차니 정말 행복했어요. 북한에 있을 때도 제법 공을 찬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 축구부에 들어갈 수 없었지요.”
축구가 좋아 무작정 공만 차던 그에게 목표가 생겼다. 유명한 축구 선수가 돼 엄마에게 자기 소식이 전해지는 것이었다. 태극마크도 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2006년 동대부중 2학년 때 서울시축구협회장배 1·2학년 대회에 스트라이커로 출전해 6경기에서 4골을 터뜨려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해 연말엔 홍명보장학재단에서 장학금도 받았다.
그의 재능과 열정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시련이 찾아왔다.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발목과 허리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죠.” 그는 고교 졸업 후 프로 구단을 비롯해 여러 팀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돈도, 인맥도 없는데다 부상 전력까지 있는 선수를 선뜻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그는 챌린저스리그 팀에서 뛴 적이 있다. 그러나 출전 수당조차 나오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선수 생활에 대한 꿈을 이제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쉬움이 남지 않느냐는 말에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아쉽지 않겠어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너무 일찍 꿈을 포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방황하던 그는 2년 만에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FNK 축구단에 가입한 것. 이후 그의 삶에 다시 행복이 깃들었다. 그라운드에 다시 서니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매주 일요일 인덕대학교 인조잔디구장으로 축구하러 갈 때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어떤 기분인지 아세요? 연애하러 가는 기분이에요. 축구가 너무 좋아 여자 친구도 안 만들었습니다.”
올해 대학에 진학한 그는 축구 지도자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자격증을 따면 유소년부터 시작할 작정이다. 최종 목표는 북한 선수들에게 선진 축구를 전수하는 것. 그는 북한에 우수한 자원이 많다고 했다.
북한 인민해방전선국장 출신인 최현준(48) FNK 회장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가지고 분발하는 모습을 보면 참 기특하죠.”
FNK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현재 150여 명의 회원들이 스포츠, 사회봉사, 정착지원, 예술행사,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 기관에서도 이들의 활동을 눈여겨보고 있다. 지난 8월 19일 외교통상부 축구동호회가 FNK 축구단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외교관인 허진씨는 히딩크 감독이 다음에 방한하면 FNK 축구단에 한 수 지도할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달 중순엔 국회축구단이 국회 운동장으로 이들을 초청할 예정이다.
FNK는 외부 지원을 받지 못해 살림살이가 늘 빠듯하다. 최 회장은 사비를 털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 FNK를 운영한다. 현재 박영구 금호전기 회장, 이상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장, 이원범 3·1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FNK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