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적 고액 체납자 무더기 철퇴… 강남 고급아파트 거주·호화 골프 여행 하면서 파산 신청

입력 2012-09-12 19:11


한 법인 대표이사인 A씨는 최근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작 자산은 재산이 한 푼도 없어 빚을 갚을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A씨의 실제 생활은 달랐다. 그는 서울 강남의 198㎡(60평)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1년에 수십 번씩 미국·중국·일본 등으로 호화 골프 여행을 다녔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 것은 물론 해외에 고가 콘도도 보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감 몰아주기와 사전 증여 등으로 자신의 재산을 모두 배우자·자녀에게 옮겨뒀기 때문이다. A씨는 운영하던 회사 주식을 전부 팔아넘긴 뒤 받은 대금을 회사의 임직원을 통해 73차례에 걸쳐 세탁을 하고, 차명계좌에 넣어 부인에게 전달하는 수법을 썼다.

요리조리 세금을 피해가던 A씨는 결국 덜미가 잡혔다. 국세청은 A씨의 부인을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소송(채무자가 빼돌린 재산을 되돌리는 소송)을 제기했다. 주택을 가압류해 8억원의 조세채권을 확보했다.

국세청은 올 상반기에 A씨와 같은 고액체납자 1420명으로부터 8633억원의 체납세금을 징수·확보했다고 12일 밝혔다. 주식을 차명으로 장기간 보유하면서 사업을 하거나 가족 등 특수 관계인의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한 체납자들이 대거 적발됐다. 허위로 근저당권을 설정하거나 부동산을 구입하고도 등기를 이전하지 않은 경우도 확인됐다. 세무조사 예고 통지를 받은 뒤 예금과 보험 등 모든 금융재산을 해약해 현금으로 숨겨놓은 체납자도 있었다.

국세청은 확인된 체납세금 가운데 5103억원을 현금징수하고 2244억원 상당의 재산을 압류했다. 사해행위 취소소송 등으로 조세채권 1286억원을 확보했으며, 체납처분을 고의로 회피한 체납자와 이를 방조한 친·인척 등 62명은 체납 처분 면탈범으로 고발했다.

악질적인 고액체납자를 무더기로 적발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숨긴 재산 무한추적팀’이 자리 잡고 있다. 국세청이 체납정리 업무 전담을 위해 지난 2월 출범시킨 이 팀은 은닉재산 추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묘해지는 재산 숨기기 수법에 대응하기 위해 ‘은닉재산 추적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체납자 및 가족의 소득변동, 소비지출, 부동산 권리관계자료 등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분석하는 것이다. 특히 해외에 재산을 숨겨놓는 경우가 늘자 전담요원으로 구성된 ‘역외체납추적전담반’까지 만들었다.

국세청은 해외에 재산을 보유한 체납자를 대상으로 세금을 추징하기 위해 최근 발효된 다자간 조세행정공조협약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사업장 수색 등 현장 중심의 체납액 징수활동도 펴기로 했다. 김연근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국내 재산과 소비실태 확인 외에도 해외재산 추적조사를 확대해 호화생활 체납자의 세금을 끝까지 징수하겠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