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야속한 軍 계급정년
입력 2012-09-13 00:50
이미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된 우리 사회에서 정년제도 정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1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중장기 적정인구 관리방안’에 따르면 고령자 기준을 65세에서 70∼75세로 높이고 단계적으로 정년을 국민연금수급연령과 맞추는 방안과 정년제 폐지 방안을 검토할 모양이다. 정년제 폐지라는 극단적인 방안을 고려할 만큼 생산인력감소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나라 평균 정년은 57.4세이고 근로자 평균 퇴직 정년은 53세이다. 아직도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의욕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일터를 떠나기에 너무 이른 나이다.
이보다 더 일찍 정년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계급정년이 적용되는 군인들이다. 지난주 군에서는 중령진급자 발표가 있었다. 중령진급자 명단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45세가 되면 전역해야 한다. 대위의 계급정년은 이보다 낮아 43세이다. 진급 여부가 곧바로 전역 여부로 연결되는 셈이다. 계급정년이 야속할 수밖에 없다.
진급심사가 시작되는 매년 3월 말과 9월 초가 되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있는 서울 용산 인근에는 저녁 모임이 자주 마련된다. 육·해·공군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충남 계룡대 근처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진급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초조주(焦燥酒)’ 모임이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동료 혹은 선후배들이 마련하는 자리다. 진급심사를 앞두고 벌어지는 이런 풍경은 다른 직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직장인 가운데 승진이나 진급으로 가슴앓이를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요즘 정년을 꽉 채우고 직장을 떠나는 이들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군인들만 유난스럽게 군다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군이라는 특별한 직종에 오랜 기간 근무하다 보면 일반 사회와의 호환성이 떨어져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불안감은 이해할 만하다.
국방부에 따르면 매년 10년 이상 근무한 장기복무자 4000여명이 군을 떠난다. 지난 5년간 1만9171명이 전역했는데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절반 정도인 1만704명에 불과하다. 재취업자 중 시설관리나 경비 또는 판매·영업직 등 월급 100만원대의 비정규직에 고용된 사람들이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정규직 취업은 상당히 낮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전역군인들의 열악한 재취업 상황이 군 전반적인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이 전역군인들의 재취업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도 계급별로 근속정년과 계급정년을 차별화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처럼 ‘진급 아니면 전역(Up-or-Out)’ 개념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 제도로 인해 일찍 전역하게 되더라도 재취업이 그리 어렵지는 않아 미래에 대한 걱정은 적은 편이 우리와 다르다. 제대군인부는 국방성과 노동부, 인사관리처 등 관련 부서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제대군인 취업지원을 해주고 있다.
독일도 계급정년을 적용하고 있지만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의 경우 채용 인원 가운데 군복무기간이 12년 이상인 전역군인이 지원할 수 있는 자리를 직위별로 할당해놓고 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게 돼 있어 자위대원은 국가공무원 특별직으로 분류된다. 군 조직의 특성상 젊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자위대원에게는 일반 공무원보다 빠른 정년이 적용된다. 일찍 퇴직해야 하는 불이익은 정년 후 계속 근무를 원하는 경우 다시 채용될 수 있고 취업을 원하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보완된다.
주변에는 재취업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반 퇴직자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제대군인에 대해 선진국 수준으로 지원해주길 바라는 건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안보상황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군인들의 안정적인 복무여건보장 측면에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은 필요하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