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귀국 기자회견… “영화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

입력 2012-09-11 22:27

자칭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의 금의환향이었다.

11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 다소 비싼 가격으로 화제가 됐던 개량 한복, 양말 없이 구겨 신은 신발, 꽁지머리. 김기덕 감독은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에게서 ‘비주류 이단아’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는 “제가 받은 이 상은 결국 한국영화계에 준 상”이라며 “외국에 나가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당신 영화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한국에도 내 영화를 아껴주고 지지해주는 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들뜬 표정과 목소리로 베니스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 시사회에서 10분간 기립박수가 나왔다. 집행위원장이 굉장히 흥분해서 ‘영화제 운영하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전해주는데 기분이 묘했다. 일반 상영 때도 산사태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많은 이가 당신 영화가 황금사자상이라고 얘기해줬다. 기분이 붕 떴고 부담이 컸다. 이렇게 올라가다 떨어지면 정말 아플 텐데 하고 생각했다. 기다렸더니 현실이 됐다.”

평소 갖고 있던 한국영화계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상영관이 개봉 당시보다 늘기는 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피에타’는 (내가 보기에) 좌석점유율이 45∼65%이다. 이 정도면 관을 늘리는 게 정상적인 상도다. 점유율 15% 이하인데 기록 세우려고 아직 관을 잡고 있는 영화야말로 ‘도둑들’ 아닌가. 일대일로 싸워서 지면 수긍하겠는데 그렇지 않다. 독점과 편법이 판치고 있다. 이렇게 시작부터 불리한 게임에서는 내가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화가 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업의 돈이 아니라 시나리오이고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며 “배우나 제작진이 개런티를 받지 않고 수익이 나면 나누는 방식으로 제작을 해왔고, 이런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시상식에서 부른 ‘아리랑’ 얘기도 나왔다. “원래 애국가를 부르려고 했는데 연습해보니 영 이상해서 제2의 애국가인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은 그동안 영화제 다닐 때마다 항상 불렀다. 중국이 아리랑을 자기네 무형유산에 등재했는데 아리랑은 부르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50억, 100억대의 투자 제의가 온다면 제작하겠느냐는 질문에 “미국과 중국의 거부들이 엄청난 돈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돈이건 가치를 객관화할 수 없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에타’가 전작들에 비해 순해졌다는 평에 대해 “외국에서도 이번 영화가 약간 대중적이라고 하더라. 난 그냥 만들었는데 그러는 거 보니 내가 변했나 싶기도 하다”며 웃었다.

그는 고가로 화제가 된 옷에 대해 “제가 큰 실수를 했다. TV 녹화를 가면서 집에 반바지에 티셔츠밖에 없어서 인사동에 갔다. 원래 10만∼15만원 정도 하는 줄 알았는데 분위기상 사게 됐다. 여자 옷인지도 몰랐다. 베니스도 가야 했고 앞으로 1년 동안은 입어야 한다. 세계영화제에 가야 하는데 이 정도는 용서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해명했다.

그는 “시상식 후 (‘피에타’가) 여우주연상(조민수)과 각본상도 내정돼 있었는데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에는 규정상 다른 상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화제가 된 강렬한 엔딩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답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