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판단 맡겨야”… 박근혜, 적극 항변 “조직 몸담았던 분들 증언 감안을”
입력 2012-09-11 21:52
인혁당 발언 놓고 민주당-박근혜 정면충돌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인혁당’ 발언을 놓고 여야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박 후보의 ‘편향된’ 역사인식을 문제 삼으며 전방위 공격에 나섰고, 박 후보는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박 후보가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을 경우 대선 정국의 주요 쟁점으로 지속될 전망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11일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당시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의 증언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에 이어 ‘사법적 판단’과 별개의 ‘역사적 판단’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적극적 입장 표명은 과거사 공세에 대한 정면 돌파 결심을 굳혔다는 방증이 된다.
박 후보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로부터 ‘인혁당 발언 논란’에 질문을 받고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도 있었지만,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계셔서 다 감안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말했던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의 연장선이다. 이 때문에 박 후보는 1975년 유신 당시 판결과 이를 바로잡은 2007년 재심 판결을 동일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법 살인’이라 불리는 사건을 놓고 사법적 판단과 역사적 판단을 분리하는 것은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무시한 인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같은 당 이재오 의원도 “박 후보가 유신의 주체”라며 비판했다. 이 의원은 “유신시대였으면 ‘피에타’ 같은 영화가 상영 금지되고 다 잡혀갔다. 박 후보가 피에타를 보며 유신에 대한 생각을 고치고 세상을 깊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보 선출 후 입장 변화를 기대했던 당내 인사들도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스텝이 꼬인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 후보는 전국농촌지도자대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법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저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조윤선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새누리당은 두 개의 판결이 존재하지만 재심 판결이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이라는 것을 존중하며 박 후보 역시 사법부의 재심 판단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박 후보가 이틀 연속 ‘역사적 판단’을 강조한 것은 광폭 행보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문제에 여전히 발목 잡혀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혁당 사건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무죄 판결까지 나온 것은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이라는 뿌리 깊은 의구심도 엿보인다. 박 후보는 2007년 1월 인혁당 재심 판결이 내려진 후 긴급조치시대 판사 실명 공개 논란이 일자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왜 하필 지금 발표하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대선 경선을 앞두고 논란이 일자 정치적 공세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경선과 후보 선출을 거치면서 큰 변동이 없는 지지율도 박 후보가 과거사에 대한 기존 입장에 자신감을 갖게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박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미래’ ‘민생’을 강조하며 과거사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박 후보 지지율은 지난 7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책이 발간된 직후 다소 약세를 나타냈을 뿐 줄곧 안 원장 등 야권 후보를 앞서고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