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농축수산물 맡기고 돈 빌리기 ‘그림의 떡’
입력 2012-09-11 18:57
충남 보령시에서 축산농장을 운영하는 이모(51)씨는 지난달 애지중지 기르던 소를 담보로 농협에서 돈을 빌렸다. 한우 250마리 가운데 136마리를 담보로 잡히고 1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중소기업 우대금리 혜택을 받아 연 3.86%라는 낮은 금리로 목돈을 빌렸지만 애초 계획했던 2억원을 채우지는 못했다. 이씨는 “담보인정비율이 낮아 3억원에 달하는 소를 담보로 잡히고도 1억원밖에 빌리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부산의 한 수산물수입업체는 우여곡절 끝에 수협에서 4000만원을 대출받았다. 20㎏짜리 냉동오징어 2265박스를 담보로 내놨지만 평가액이 6250만원밖에 되지 않아 대출 한도액이 2000만원에 그쳤다. 다행히 수협에서 이미 운영해 온 냉동수산물 대출 상품과 혼합해 연 9.9%라는 높은 금리에 4000만원을 빌릴 수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지만 이것저것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소·쌀·수산물 등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동산담보대출 상품이 ‘속빈 강정’으로 전락하고 있다. 마땅한 담보가 없어 은행 문을 두드리지 못했던 농어민들은 잔뜩 기대했지만 여전히 ‘대출다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11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동산담보대출은 지난달 8일 출시된 뒤 한 달 동안 1130억원이 이뤄졌다. 이 가운데 농축수산물을 담보로 한 대출은 소 1건, 쌀 1건, 냉동오징어 1건 등 3건에 그쳤다. 대출금액은 1억7000만원으로 전체 동산담보대출액의 0.15%에 불과했다.
농축수산물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던 금융당국의 대대적 홍보와 달리 농축수산물은 담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계 등 유형·재고자산은 담보인정비율이 평가액의 50%까지, 매출채권은 80%까지인 반면 농축수산물은 40%가 최고치다.
심지어 기존 상품보다도 동산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이 야박하다. 실제로 수협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냉동수산물 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최고 70%)이 되레 높다. 수협 관계자는 “기존에 있던 상품보다도 인정비율이 낮으니 고객들이 동산담보대출을 잘 찾지 않고 있다”며 “지금보다 10∼20%는 인정비율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다 담보평가액이 시세보다 낮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은행권은 농축수산물의 경우 기계나 매출채권과 달리 위험성이 크다며 시세 대비 60∼80% 수준으로 담보가격을 매긴다.
담보를 평가하는 기간도 길다. 상품 상태가 천차만별이다 보니 일일이 상품을 점검하고 가격을 매기는 데 드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이렇다 보니 돈을 빌리려 했던 농어민은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다.
예상보다 실적이 부진하자 금융당국은 추가대책을 마련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영농법인 등이 회계장부나 상호등기가 제대로 안 돼있는 데다 평가사들도 소나 수산물 담보평가를 거의 해보지 않아서 쉽게 대출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전문 평가인력 충원 등으로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