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자체 운영 ‘거문오름’은… 탐방객 하루 300명만, “야호!” 고성도 금지
입력 2012-09-11 18:41
WCC가 열리는 열흘 동안 독특한 식생과 역사를 간직한 거문오름은 예약 없이 탐방객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인데도 일반인, 중학생 단체, 외국인을 포함한 WCC 참가자 등이 십수명씩 짝을 지어 30분 단위로 오름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건너편에 보이는 분화구에서 분출된 용암이 북쪽으로 흐르다가 북오름을 만나서 한 갈래는 만장굴까지 이어지는 용암동굴계를 형성했고, 다른 갈래는 동백동산과 선흘곶자왈을 만들었습니다.” 김상수 자연유산해설사(전 선흘리 이장·사진)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탐방객들이 정상까지 따라오자마자 입을 열었다. 일본군 동굴진지 앞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4·3사태 등 제주도 근대사의 고난을 일깨웠다. 제주도와 인근 섬에서만 자라는 붓순나무를 소개하면서 “산에 장기간 도피중 음식을 익히려고 할 때 붓순나무로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거문오름은 탐방사전예약제와 하루 300명의 인원 총량제를 지키고 있다. “스틱·우산·양산을 못쓰고 물 이외의 음식 섭취, 야호와 같은 소리지르기도 금지됩니다. 탐방로의 표층이 얕아서 스틱 등으로 헤집으면 쉽게 비에 쓸려갑니다. 사람의 큰 소음은 새들의 산란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주는 김밥 때문에 한라산 정상까지 까마귀가 올라갑니다.” 김씨의 설명에 탐방객들은 귀를 기울였다.
한라산의 기생화산인 거문오름은 말굽형 분화구의 둘레가 4551m나 된다. 백록담의 2300여m보다 훨씬 더 크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동굴들 가운데 만장굴, 김녕굴, 벵뒤굴, 당처물동굴, 용천동굴 등 5개의 동굴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거문오름은 분화구가 클 뿐만 아니라 용암하도를 따라 곶자왈 지형과 함몰구 등의 미기후가 발달해 다양한 식생을 나타낸다. 용암하도에는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식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분화구 안쪽의 동북사면에는 서어나무, 때죽나무, 예덕나무, 팽나무 등 낙엽활엽수림대가 주로 나타난다. 분화구 바닥에는 상산, 복분자, 쥐똥나무 등이 자란다. 오름 능선에는 1970년대에 심은 대규모 삼나무 숲이 있다.
거문오름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2007년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부터다. 김상수씨는 거문오름을 가장 잘 아는 마을사람들이 해설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씨와 뜻을 같이 한 마을주민들은 2007년 여름부터 1년간 일주일에 두 번씩 도청과 환경단체가 마련한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마을주민인 해설사 현계생 씨는 “갑자기 비가 많이 오고 나면 나무에 버섯들이 많이 피어나는데 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말하기 싫어서 다방면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제주시 절물휴양림의 생이소리길에서도 스틱사용이 제한됐다. 사전예약제와 인원총량제는 다른 지역에도 서서히 퍼져갈 조짐이다. 문제는 마을주민들에게 이렇다 할 수익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거문오름 입구에 완공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개관하는 10월 1일부터 거문오름 입장료 2000원, 유산센터 관람료 3000원씩을 받을 계획이다. 김씨는 “그것만으로 해설사 인건비를 포함한 지속가능한 생태관광 모델을 만들 수는 없어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제주=임항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