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우기지 말고 토론을

입력 2012-09-11 18:50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역사 인식에 공방이 많다. 5·16쿠데타, 유신, 인혁당 사건이 최근의 쟁점이다. 문제라고 말하는 쪽에서는 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이 의심스럽다고 공격한다. 더 키워야 할 주제로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박 후보는 “사안에 대한 판단이 여러 가지이므로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이 문제가 부각되는 걸 피해 가려 한다.

이런 쟁점의 밑바닥에는 사회와 역사를 보는 인식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크게 보면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흐름에서 갈린다. 양쪽 어느 편에든 확실하게 자기 입장을 정리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얘기해도 시각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 입장에 나와 가족의 생계 심지어 생존이 걸려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후보 역사인식 공방

이런 상황에서 논쟁하는 걸 보면 거의 우기는 수준이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토론의 기술에 상대방 얘기를 막아버리는 방법이 있다. 저쪽이 무슨 얘기를 하든지 내 입장만 반복한다. 표현도 바꾸지 않고 몇 번이고 그대로 말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그만둔다. 이게 우기는 것이다.

한쪽이 우기면 다른 쪽은 화가 치민다. 그래서 같이 우기게 된다. 말이 험악해지고 인신공격도 한다. 결국 거칠게 싸운다. 이렇게 되면 쟁점이 대화나 토론으로 풀릴 가능성은 물 건너간다. 공권력, 물리력, 조직력에서 누가 더 세느냐로 일이 진행된다. 건강한 의미의 정치는 실종되고 사법권에 기댄다. 사법권이 존경받는 상황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사법권이 정치에 휘둘리면 사법적 판단 때문에 상황은 최악이 된다.

그래서 이런 심정을 갖는 사람이나 집단이 생긴다. ‘힘이 없어서 당했다, 억울하다, 두고 보자, 어떻게든 권력을 쥐고야 말겠다….’ 권력 투쟁이 살벌해지고 지연, 혈연, 학연 등 모든 끈을 다 끌어대면서 사회가 험악해진다. 오랜 친구도 원수가 된다.

권력 투쟁을 할 상황이 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뿜어내는 사람이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다. 분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은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오랜 우리말로 속병이다. 이것이 갖가지 병이 된다. 하루에 42.6명이 자살하는 슬픈 우리 자화상의 사회적 맥락이 이렇다. 뺏기고 당했다는 분노가 자기 승화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사회적으로는 종교가 이런 역할을 한다.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았다. 전선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더 많이 우길 것이다. 우기지 않고 대화하고 토론할 수는 없을까. 한 술에 배부른 방법은 없어도 길은 있다. 먼저 당사자들이 개론만 얘기하지 말고 각론을, 곧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야 한다. 특히 공적인 명분에서 자신 있는 쪽이 ‘디테일’을 얘기해야 한다. 상대방이 디테일에 대해 토론하지 않고 개론으로 우길 수도 있다.

개론 아닌 각론을 얘기해야

그러나 국민이 보고 있다. 국민이 이젠 그렇게 우매하지 않다. 정치에 실망하고 무관심한 유권자가 많다. 말하자면 ‘그놈이 그놈이다’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들으면 제대로 판단한다.

쟁점 사안이지만, 일반 국민들은 모르는 것이 많다. 인혁당 사건의 디테일을 유권자가 얼마나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신이 법리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일반 국민이 얼마나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끊임없이 디테일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되고 토론 문화가 자리 잡힌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 하나,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이 디테일을 보도하고, 또 당사자들이 그걸 말하도록 물어야 한다. 기독교의 가치관으로 말하면 이것이 진리와 사실을 밝혀 정직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지형은(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