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로비스트 사외이사라면 없는 게 낫다
입력 2012-09-11 18:43
사외이사 제도는 대주주 독단경영과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당시 상당수 대기업 오너들이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중복·과잉투자에 몰두하다 외환위기를 맞아 기업과 종업원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참회에서 시작됐다. 그렇지만 도입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사외이사들은 여전히 본연의 임무는 망각한 채 고액연봉에 취해 대주주의 불법과 비리를 전혀 막지 못하고 있다.
서민들의 푼돈을 맡아 불려 주겠다던 저축은행의 불법·비리가 사외이사 무용론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하고는 옛 자신의 일터 선후배에게 로비나 벌이는 한심한 행태가 검찰수사에서 낱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사외이사 자리는 교수들이나 퇴직 관료들의 놀이터로 변한 지 오래됐다는 말이다.
어제 공개된 대기업 공시 자료에 따르면 삼성·롯데·한화·두산 등 10대 그룹 소속 93개 상장계열사의 사외이사는 6월말 현재 모두 330명이며 이 가운데 77명이 새로 뽑혔다. 문제는 신임 사외이사도 대부분 교수와 권력기관 출신 공무원이라는 점이다. 전직 차관이나 차관급 공무원이 10명, 교수가 31명, 권부 출신이 2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과연 주주를 대신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을 견제·감시하는 사외이사 본연의 취지를 살릴지는 미지수다. 일부 교수직 사외이사는 감시는커녕 회사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이론적인 뒷받침을 제공하는 한심한 역할을 한 점 등을 보면 미덥지 못하다. 다른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최고운영책임자, 은퇴한 고위 임원 등을 선호하는 외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외이사는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인사가 맡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위해 별도의 추천기구를 만들어 객관적인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상태를 감독하고 조언하는 인사를 뽑아야 한다. 아울러 회사 경영 정보 접근권을 높이는 동시에 불법을 묵과할 경우 책임을 추궁하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