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그린란드
입력 2012-09-11 18:44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이 우리나라의 20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인구는 5만6000여명에 불과하다. 사실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린란드에 대해 배운 것은 나라 이름뿐이다. 과거 유럽의 한 왕이 그린란드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얼음뿐인 이곳을 녹색의 땅(green land)이라고 속이고 이주민을 보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982년 살인죄로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된 바이킹 에리크 토르발드손이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그린란드 해안에는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는 4년 뒤 아이슬란드에서 이주민을 모아 배 35척에 나눠타고 그린란드로 돌아갔다. 이후 이들은 300여년 동안 양을 키우며 살았다. 세부적인 내용은 책마다 다르지만 그린란드와 관련된 ‘붉은 머리 에리크’ 이야기는 이렇게 유럽 역사에 남아있다.
빙하에 둘러싸인 그린란드에 노르웨이가 근거지인 바이킹이 어떻게 진출했을까. 강이 끝나면 배를 메고 산을 넘었다는 바이킹이었기에 가능했을까. 그게 아니었다. 당시 바이킹은 그린란드뿐 아니라 캐나다 뉴펀들랜드까지 진출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북극해를 휘젓고 다녔다.
이때가 중세온난기(medieval warm period)였기에 가능했다. 당시 유럽의 연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2도 가까이 높았다. 영국에서 포도를 재배할 정도였다.
그린란드는 1300년쯤 다시 얼음 속에 갇힌다. 지구에 소빙하기가 찾아온 뒤부터다. 북극해는 배가 다닐 수 없게 됐다. 그린란드에 정착했던 바이킹들은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갔다.
바스코 다 가마를 통해 인도항로를 개척했던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는 1500년 아시아로 가는 다른 길을 개척하려고 가스파르 코르테-레알을 보냈다. 그는 빙하 때문에 북극항로를 열지 못했고,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그린란드 일부 해안만 확인했다. 그의 보고서에 쓰인 그린란드는 쓸모없는 땅에 불과했다.
20세기 들어 그린란드는 다시 세계에서 가장 큰 보물섬이 됐다. 500억 배럴 가까운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최대 희귀광물 보유지역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그린란드를 공식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빙하가 녹아내린 바다를 보고 ‘비극의 장소’라고 했다. 그러나 그린란드 사람에게 기후변화는 700년 만에 바닷길이 열리는 ‘기회’일 수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