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바람 앞에 선 인간
입력 2012-09-11 18:11
태풍 ‘볼라벤’은 강풍을 몰고 왔고 이어진 ‘덴빈’은 엄청난 비를 뿌렸습니다. 이번에 한반도를 휩쓸고 간 태풍은 최악의 항공기 결항사태를 비롯하여 기록적인 정전 사태 그리고 항만 및 선박, 농산물 등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습니다. 물론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재난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최고의 경제, 과학 대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태풍뿐 아니라 더위와 추위, 폭우와 폭설 등의 재난이 전에 없이 잦고 그 위력이 커져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린 이런 재난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교만을 보아야 합니다. 난개발로 인한 자연 파괴와 편리한 생활을 위한 탄소배출량의 증가는 해수면과 바닷물 온도의 상승, 기후변화 등을 불러왔습니다. 이런 생태계의 위기에서 지구를 보전하려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원리는 엄청난 태풍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태평양 서쪽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이 만들어내는 태풍은 바닷물 온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 태풍이 지구환경의 악화를 막아주는 순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똑똑한 머리로 과학을 발전시키고 편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속에 엄청난 재난도 함께 잉태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교만은 또 다른 재난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바람 앞에서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낮은 자세입니다. 납작 엎드리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뻣뻣하게 서서 바람과 맞서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은 없습니다. 태풍은 우리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까요? 이제 좀 겸손해지라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던 중 착륙 직전 김포공항으로 되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착륙을 시도하던 비행기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더니 이내 상승하여 출발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제주의 심한 바람 때문에 회항한다는 방송과 함께. 김포에서 몇 시간 기다리다 다시 제주로 갔습니다. 첨단과학의 상징인 항공기가 바람 앞에 꼼짝 못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바람에도 하나님의 메시지가 실려 있습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큰 힘이 스치는 바람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땀 흘려 가꾼 것들이 바람으로 인해 한순간에 날아간 들녘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농부의 얼굴이 우리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바람 앞에 언제 꺼질지 모를 촛불 같은 인간이 어찌 큰소리치겠습니까? 그럼에도 인간들이 우쭐대다가 연기 조금 남긴 채 사라져 버립니다. 이쯤 되면 정신을 차릴 것 같은데 바람이 조용해졌다 싶으면 다시 고개를 뻣뻣하게 세웁니다. 더 당하기 전에 엎드립시다.
<산정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