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불거진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 논란
입력 2012-09-10 21:26
자유롭기 어려운 과거사 엄격 평가해야 미래 열린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인혁당 사건’ 관련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박 후보는 10일 MBC 방송프로에 출연해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 대한 사과 용의를 질문받자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면서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박 후보가 언급한 대법원의 판결은 유신 체제 당시이던 1974년 4월 8일 ‘인혁당재건위원회’ 관련자들에게 사형 등이 선고됐던 유죄 판결과 2009년 이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내려진 대법원의 국가 배상판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판결의 방향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 추가 판결이나 역사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후자는 1974년 판결을 재심해 내린 새로운 결론이어서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2005년 12월 노무현 정권 당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해 정권에 의해 자행된 조작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고, 법원도 이런 사정들을 반영해 과거 판결을 뒤집고 무죄 선고를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박범진 전 의원 등 사건 당사자로부터 실체가 없는 허무맹랑한 조작은 아니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지만 극형을 선고한 법 적용 문제나 판결 확정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뤄진 사형 집행 절차 등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보수 진영에서도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번 발언을 두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박 후보 진영으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야당들은 2007년 1월에도 대권주자였던 박 후보가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역사인식을 공격하고 있다.
박 후보는 이미 5·16과 유신 체제에 대한 시각과 관련해서도 여러 차례 논란을 야기했다. 5·16에 “구국의 혁명”이란 용어를 썼고 유신 체제에 대해 “공과가 있으며, 역사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박 후보는 어제도 “당시 아버지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다”며 10월 유신 단행의 선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역사 평가를 놓고는 공과의 갈림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5·16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사회분위기를 일신하며 경제개발을 이끈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5·16의 성격이 쿠데타에서 시민혁명으로 바뀔 수는 없다. 역사에 평가를 맡긴다고 10월 유신 이후 벌어진 정치 파행과 인권 탄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박 후보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객관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가 되려면 국민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는 과거 역사에는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박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을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보고 엄격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그를 넘어 미래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