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여뀌꽃 핀 언덕의 백로

입력 2012-09-10 18:39

前灘富魚蝦앞 여울에 고기와 새우 많아

有意劈波入물결 가르고 들어가고 싶었지

見人忽驚起사람 보고 풀쩍 날아올랐다가

蓼岸還飛集여뀌꽃 언덕에 돌아와 앉았네

翹頸待人歸목 빼고 사람 가길 기다리느라

細雨毛衣濕가랑비에 깃 젖는 지도 모르네

心猶在灘魚마음은 여전히 여울 속 고기에 가 있는데

人道忘機立사람들은 말하네 기심 잊고 서 있노라고

이규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2 ‘蓼花白鷺’


먼 옛날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을 때 하늘은 좁쌀비를 뿌리고 귀신은 밤새 울었다고 ‘회남자’에 전한다. 문자를 가지고 조화의 비밀을 캐낼까 두려워한 나머지 귀신은 통곡했고, 배를 불려 인간의 사유를 무디게 할 요량으로 하늘은 곡식을 뿌렸다는 것이다. 우려했던 대로 인간은 문자로 조화의 자물쇠를 열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잘 여는 사람이 있다. 시인이다.

이규보는 벗을 찾아갔다가 그림을 보았다. 백로를 그린 그림이다. 여울이 있고, 옆에는 여뀌꽃이 핀 언덕이 있다. 언덕엔 백로가 앉아 무심한 듯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안개비라도 내리는지 화면은 뿌옇다. 백로의 탈속한 격조가 담담하게 잘 표현된 그림은 한 눈에도 일품이었다.

그러나 이규보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시를 읊었다. 요컨대 지극히 우아하고 탈속적으로 보이는 이 그림의 이면에 담긴 진실은, 가랑비에 깃이 다 젖도록 미동도 않고 서서 사람이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백로의 집요함과 탐욕이란 것이 이규보의 해석이다. 일반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과 완전히 상반되는 이 해석은 사실 자연과학적 실제에 기초한 것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한 ‘낯설게 하기’도 결국 ‘비밀의 폭로’란 뜻의 다른 표현이 아니겠는가. 이규보는 막대한 자신의 죄에 대해 귀신의 입을 빌려 이렇게 꾸짖었다. “조화의 현묘함은 아득하고 기관의 오묘함은 자물쇠로 굳게 잠겼는데, 너는 생각 없이 영묘함을 염탐하고 비밀을 발설하니 당돌하기 그지없다. 이것이 너의 죄이다.”

이규필(성균관대 대동문화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