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부산의 부상

입력 2012-09-10 18:39

부산의 전통적인 이미지는 항구다. 분주히 오가는 연락선과 화물선이 도시의 힘이다. 산과 바다가 바짝 붙어있다 보니 시가지의 형태도 해안을 따라 길쭉하게 퍼져있다. 바닷가 도시가 다 그렇듯 부산도 거칠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한 음계쯤 높아 야구 응원하기에 좋다. 도시의 표정도 그리 밝지 못했다. 국제시장은 밀수의 음습한 그림자가 스멀댔고, 광복동은 왜색문화의 관문처럼 여겨졌다.

이런 부산이 몇 년 사이에 확 달라졌다. 해운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지방자치가 꽃피운 부분이 있긴 해도 부산영화제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1996년에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준비하자 서울의 영화엘리트들이 대거 부산으로 내려갔다. 행사의 권위가 높아질수록 부산을 찾는 영화인과 비즈니스맨들의 격이 달라졌고 덩달아 부산의 명성도 높아갔다.

문화는 또 다른 문화를 낳는다. 영화도시 부산의 이름에 걸맞게 시민들의 영화사랑도 커졌다. 도심추격 장면을 찍기 위해 교통을 통제해도 시민들이 쉽게 수용한다. 지금 1300만 기록을 목전에 둔 ‘도둑들’의 경우 총격장면은 부산데파트에서, 범인들 아지트는 서라벌호텔에서 찍었다. 촬영지로 인기를 끌다보니 중국, 인도네시아에서도 드라마를 찍으러 부산을 찾는다고 한다.

사투리에 대한 저항감이 약화된 것도 부산의 인기를 높이게 하는 요인이다. 요즘 사투리는 지역감정의 표출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요즘 한창 인기인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원단 사투리가 나온다. 개그콘서트에서 ‘서울 메이트’를 잇는 코너 ‘어르신’은 순전히 경상도 사투리만으로 꾸미고 있다.

부산은 대중문화 외에 순수예술의 세례를 받기도 했다. 사하구 감천마을은 달동네의 불량주택 밀집지역에서 문화촌으로 탈바꿈했다. 사진작가들이 언덕에 줄지어 서있는 마을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이 새로운 발견의 계기였다. 그동안 기차가 서지 않던 부산진역사는 전시공간으로 거듭났다. 정체성 부족이라는 도시의 고민을 문화가 해결한 것이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아니라 자긍심 가득한 곳으로 부상했다. 휴가지로 부산이 손꼽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다만 부산 안에서도 해운대와 구도심권의 지역격차가 크다는 게 문제다. 마침 대선 후보인 안철수와 문재인 모두 부산 출신이니 이런 고민을 더는 데 도움이 될까.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