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代 정부, 36조 항만투자 ‘주먹구구’… 시설마다 ‘텅텅’
입력 2012-09-10 21:56
정부가 지난 15년 동안 항만시설 확장에만 36조원가량을 쏟아 부었으나 수요가 따르지 않아 곳곳의 항만이 텅 빈 채 부실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으로 전국에 여러 공항이 신설됐다가 수요가 없어 문을 닫았던 전례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국토해양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항만 투자 및 운영현황’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5년간 항만개발에 35조6719억원을 투자했다.
일반 부두에 4조5016억원, 컨테이너 부두에 4조6189억원을 투자했다. 방파제를 만들거나 배후도로를 준설하는 등 항만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는 무려 26조5514억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다.
4대강 사업에 들인 돈 22억2000억원보다 14조원 이상 많은 것이다. 이 밖에 2002년 이후 정부가 항만 민간 사업자 16곳에 보조한 예산도 일반 부두(10개) 3536억원, 컨테이너 부두(6개) 9040억원 등 1조2576억원에 이른다.
정부별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1998∼2002년) 6조8652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노무현 정부(2003∼2007년) 땐 15조466억원을 쏟아 부었다. 현 정부(2008∼현재) 들어서도 이미 13조7601억원이 투입됐다. 이에 따라 전국 항만별 시설확보율은 1999년 86.5%에서 지난해 99.0%로 적정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항만별 편차가 극심하게 벌어졌다.
부산과 인천 등은 물동량에 비해 여전히 시설이 부족하지만, 나머지 항만은 과도하게 확장하거나 시설을 짓는 바람에 곳곳이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속초의 경우 시설확보율이 무려 2031.3%에 달했다. 물동량의 20배가 넘는 시설이 들어서 있는 셈이다. 여수(840.8%), 진해(293.7%), 장항(162.4%), 삼천포(164.2%)도 시설확보율이 적정수준을 크게 넘어섰다.
특히 컨테이너 부두의 경우엔 편차가 더 컸다. 물동량이 많은 부산(87.5%)과 인천(56.1%)은 시설확보율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마산은 시설확보율 625%를 기록했고, 광양(259%), 울산(199.4%), 군산(196.7%), 평택·당진(181.1%)도 과도한 시설투자가 이뤄져 있었다.
광양항은 지난해 하역능력의 40%에도 못 미치는 물동량을 처리했다. 지금도 시설이 남아도는 데도 정부는 2020년까지 광양항에 예산 2조4091억원을 더 투자할 계획이다.
신항건설과 확장으로 물동량 확보를 위한 항만운영업체들의 하역료 인하 등 출혈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1997년 170개였던 업체는 지난해 384개로 늘었다. 현재 우리나라 하역료는 1TEU당 20∼40달러로 중국(70달러), 일본(184달러)에 비해 턱없이 싸다. 이에 따라 항만운영업체들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영남권 일부 신항의 경우 운영업체 5곳이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물동량 확보를 위해 컨테이너에 보조금을 주면서 재정 압박이 심화돼 지자체까지 연쇄 부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 의원은 “물동량의 90% 이상이 부산이나 인천항으로 몰리는 데도 보여주기식 행정이 이런 사태를 불렀다”며 “지금이라도 다른 지역 항만의 건설을 중지하고 관련 예산을 다른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