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베니스 쾌거] 51년 걸린 ‘세계정상’… 한국영화 100년史 최고 선물

입력 2012-09-09 19:23


51년.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 처음 진출해 ‘최고’를 인정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은 후 51년 만에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8일(현지시간)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한국영화사에 한 획이 그어졌다.

◇‘피에타’ 수상 의미=‘피에타’의 수상은 김 감독 개인의 명예는 물론 한국영화의 위상까지 드높였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은 9일 “김 감독의 수상은 한국영화 100년사에 최대 쾌거”라며 “한국영화계를 대표해 김 감독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황금사자상 수상은 한국영화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수상에 한국영화계가 마냥 자랑스러워할 형편은 아니다. 우리 영화계가 그에게 해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시월애’ ‘푸른소금’의 이현승 감독은 트위터를 통해 “김 감독의 제작비 대부분은 자신의 돈과 해외 판매 수익으로 충당된 것이다. 한국영화계가 키워낸 감독이 아니라 한국 밖의 관객과 영화인이 키운 감독”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세계에서는 일찌감치 인정받았지만 김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는 철저한 비주류 아웃사이더였고, 흥행작도 없었다. 지난해 ‘아리랑’으로 칸영화제에 갔을 때만 해도 그는 세상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한국영화계를 비난했다. 작품 속에서 그는 “너무나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며 울었다. 당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모두 거절했다.

김 감독이 최근 베니스영화제 출국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수상하면 다음 작품을 꼭 만들겠다”고 했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을 받지 못하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이제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수상은 김 감독을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 셈이다.

◇한국영화, 국제영화제 도전사=61년 ‘마부’ 이후 두 번째 국제영화제 수상은 26년 만에 나왔다. 87년 강수연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다. 2002·2004년에는 칸·베니스·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등 잇따라 수상 소식이 들려오며 한국영화 전성기를 알렸다.

그후 2007년 전도연이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2009년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2010년 이창동 감독이 ‘시’로 칸영화제 각본상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베니스에서 수상 소식은 뜸했다. 특히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이후 ‘피에타’ 전까지 한국영화는 베니스 경쟁 부문에 한 편도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피에타’의 수상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재임명된 알베르토 바르베라의 공이 컸다. 그는 한국영화와 김 감독에게 깊은 애정을 표시해 온 인물이다. 그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던 시절 김 감독의 ‘섬’과 ‘수취인불명’을 베니스로 초청했고, 이탈리아 토리노 영화박물관장 시절에는 김 감독 특별전을 개최할 정도로 그에 대한 애정을 표시해 왔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