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 D-100] 朴 “대통령 이번엔 꼭 내가” vs 安 “대통령 해도 될까요?”
입력 2012-09-09 21:50
“이번엔 꼭 제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하는 여자와 “정말 제가 대통령을 해도 되겠느냐”고 묻고 다니는 남자. 같은 주제를 정반대 화법으로 얘기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결은 ‘두 정치’의 충돌이다. 강력한 권력의지로 국민을 설득하는 ‘카리스마 정치’는 익숙해서 안정감을 준다. 지지자들이 안달을 낼 만큼 국민의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형 정치’는 정말 낯설어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준비된 대통령 vs 처음 보는 대통령=‘박근혜 후보’가 만들어진 궤적을 살펴보면 기존 ‘정치 문법’이 충실히 반영돼 있다.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대통령의 딸’이란 태생적 배경이 만들어낸 밑거름이다. 충성스런 지지층도 오랜 세월 변치 않고 두텁게 자리를 지켰다.
큰 정치인이 되려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는 3김(金) 시대 정치판의 ‘상식’을 박 후보는 훌륭히 소화했다. 비리 때문에 국민이 외면한 당을 여러 차례 구했다. 4·11 총선, 2006년 지방선거, 2004년 4·15 총선에서 새누리당(한나라당)이 압승하거나 참패를 면한 건 그의 카리스마 덕이다. 세종시 수정안 등을 놓고 이명박 정부와 대치할 때도 정면 돌파해 강한 리더십을 확인시켰다. ‘여성 대통령 불가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그의 이미지는 ‘여성 정치인’이 아닌 ‘강한 정치인’이다.
이런 모습이 지나쳤는지 박 후보 주변 사람들은 그를 무척 어려워한다. 집착에 가까울 만큼 원칙과 약속을 중시하는 모습이 더해져 ‘불통 정치’란 비판을 받는다. 계파는 이제 없다고 강조했지만 그의 주변엔 ‘친박’을 자처하는 이들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공천헌금 의혹’ ‘불출마 협박 논란’에서 보듯 박 후보의 구시대적 이미지는 상당 부분 이들에게서 기인한다.
반면 안 원장은 독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지렁이처럼 군다. 스스로 “정치는 처음이라서…” 하며 초보 티를 팍팍 내고 다닌다. 국민들은 정치 9단이 아닌 아마추어라서 오히려 더 그에게 열광하고 있다. 저서에 밝힌 내용과 취재진에게 던지는 말도 정치인의 언어와 거리가 멀다. “이런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식의 상식에 기초한 이야기지만 지지자들은 그 평범함에 점수를 준다.
출마하라 난리인 사람들에게 안 원장은 되레 “출마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세력 정치가 아닌 ‘나 홀로 정치’를 하고 있다. 금태섭 변호사는 “자꾸 나를 기존 정치권 용어로 ‘측근’이라 부르는데 솔직히 나는 그 말이 제일 듣기 싫다. 나는 안 원장과 주종관계 같은 측근이 아니고 그냥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항변한다.
이런 안 원장이 어떻게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국민들이 정통적인 정치에 계속 실망하면서 언젠가부터 권위 없고, 국민 말을 잘 듣고, 여의도 권력정치보다 생활정치를 잘할 것 같은 사람을 기대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너무 커져 버렸다. 기대는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큰 양날의 칼이다. 검증이 시작됐고 그 잣대는 어느 후보보다 엄격해지고 있다. TV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 10년 전 밝혔던 작은 의견 하나가 모두 검증 대상이 됐다.
◇박근혜는 안철수를, 안철수는 박근혜를 닮아야 이긴다?=박 후보는 7월 10일 출마선언에서 “우리 정치는 국민 삶의 문제가 아니라 정쟁과 비방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스스로 채찍질했다.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시대흐름을 의식한 발언이다. 또 ‘대통합 행보’로 소통에 적극 나서는 중이고, 젊은층과 스킨십도 강화하고 있다. 그 배경엔 안 원장이 있을 것이다.
안 원장 역시 청년실업, 노년 일자리, 여성 문제, 과학기술, 농업 발전과 관련된 현장을 찾아다니며 ‘대선 공부’를 하고 있다. 조만간 평화·안보와 관련된 곳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준비된 대통령’과 ‘안정’을 선점한 박 후보와 무관치 않은 행보라고 해석된다.
이 때문에 대선에서 두 사람이 싸우게 될 경우 자신이 부족한 점은 차이가 없어 보이게, 또 상대보다 우위인 점은 최대한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