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소통…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로 11년만에 호흡 맞춘 연출가 주호성-배우 윤주상
입력 2012-09-09 18:26
연극인 주호성(본명 장연교·62). 그는 한때 신인 연기자 사관학교 교장으로 불렸다. 그만큼 연기지도가 탁월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그를 국내 연극계에서 만나긴 힘들었다. 한류스타인 딸 장나라와 중국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연극계 대표 배우 윤주상(63). 1970년 데뷔해 42년 동안 ‘베니스의 상인’ ‘리타 길들이기’ 등 셀 수 없는 작품에 출연, 각종 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 역시 TV 드라마 출연이 잦아지면서 6년 전 연극 무대를 떠났다.
이 두 사람이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로 의기투합해 다시 관객을 만났다. 지난 3월 초연됐던 이 작품이 ‘2012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에 국내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됐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죽이 잘 맞는 오랜 친구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2001년 김태수 작가의 ‘꽃마차는 달려간다’라는 작품에 연출자와 배우로 함께 했다. 윤주상은 “그때처럼 셋이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해서 김 작가에게 대본을 요청했다. 희곡을 보는 순간 주호성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같이 해보자고 대본을 보냈더니 그가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윤주상이 맡은 역할은 보청기회사 사장.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 성공했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불같은 성격으로 회의 중 뇌출혈로 쓰러진 봉달수가 자서전을 쓰기로 하고, 국내 최고의 여성작가를 섭외한다. 연극은 두 사람이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다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윤주상은 6년 만의 연극 출연에 대해 “갈증을 느꼈다. 마음은 연극에 있는 데 못했다”며 “드라마와 영화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지만 연극은 관객 앞에서 함께 호흡하며 맞춰간다. 연극은 살아있는 느낌”이라고 감회를 전했다.
주호성은 “연극은 역시 배우 연기 보는 재미다. 이번에도 윤주상이 어떻게 할지 그림이 그려졌다. 예전부터 노역을 많이 했는데 이제야 제 나이를 찾은 배역을 만났다. 이 연극은 사실상 윤주상이 단독 주인공이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작은 눈썹의 떨림, 입맛 다시는 소리, 걸어가는 뒷모습 등 디테일한 연기가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윤주상도 질 수 없다. “주호성은 불필요한 장치를 없앤 깔끔하고 정직한 무대를 좋아한다. 배우들에게도 ‘이건 틀렸어’ 대신 ‘덜 좋다, 덜 가깝다’는 말로 주눅이 안 들게 만든다”고 전했다. 주호성은 “연기라는 게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깨달아가야 한다. 감성은 경험과 상식, 통찰력이 없으면 깨닫기 어렵다”며 “어떤 작품이건 이 작품을 내 대표작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40여년 배우 인생에서 다시 돌아갈 곳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윤주상. 그는 “지금 드라마나 영화를 주름잡고 있는 후배들 중 연극배우 출신이 많다”며 연극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배우로 이경영 최민식 손병호를 꼽았다.
사회적으로 흉흉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두 사람은 이 모든 것이 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주호성은 “남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서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고함치는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중화권에서 쓰는 단어 중에 ‘來意(래의)’라는 게 있다. ‘너의 뜻이 내게 왔다’는 뜻인데 지금 세대에게 이 연극이 보내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대인을 위한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는 이달 21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02-742-7601).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