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영 (6) 끝없는 소녀가장 생활 “하나님 이건 너무해요”
입력 2012-09-09 17:44
“하나님, 이건 너무 해요. 정말 억울하단 말입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지요?”
며칠 전 받은 월급도 가족 부양하는 데 쓰고 나니 내 수중엔 회사를 다닐 차비조차 부족했다. 나는 교회로 달려가 억울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왜 내가 번 돈을 다 털어 동생들을 가르치고 정작 난 한 푼도 없는 신세가 돼야 하는지 설움이 북받쳐왔다.
나는 어느새 몸이 불편하다고 타박을 일삼는 엄마와 어린 네 명의 동생을 부양하는 소녀가장이 돼 있었다. 기능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전세금을 충당하고, 회사 월급은 가족들 생활비와 동생들 학비로 지출됐다. 사람들은 엄마와 동생들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얘, 네 인생만 잘살아도 돼”라며 충고하기도 했다. 이 말 속에는 ‘장애인인 네가 무슨 가족을 돕겠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섞여 있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우연히 배운 기술로 인생의 기반을 마련했다, 내 한 몸도 힘들다고 울며 보낸 십대 시절, 나는 죽을 만큼 노력하고 공부하면서 도움을 받는 위치에서 주는 위치로 운명을 바꿨다.
이제 내 인생을 살면 된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는 인생이 진정 행복한 것인가. 고생은 자처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스무 살 이후 ‘돈 주고도 못할 고생’을 스스로 감내했다. 그중 하나가 가장으로서 집안일을 책임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위한 희생이나 헌신을 할 수 있는 마음은 있었지만 스스로를 다독일 명분을 찾아야 했다.
첫째는 사서오경에서 가르쳐 주는 ‘충·효·예’의 덕목을 실행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나를 위해서였다. 예수님을 믿고 사회적 성공을 이뤄나가면서 깨달은 사실은 한 사람의 인생 기반은 역시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가족의 평화도 못 이루는데 어떻게 내 성공이 이뤄지겠는가. 설혹 성공해도 가족들이 무너지면 그 성공은 온전치 못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즉 자신의 성공을 위해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지극한 이기심이 내겐 명분이 되었다.
내 가족은 잘못된 곳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 힘을 보태지 않으면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의 삶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악다구니를 치며 살아야 할 판이었다. 가난은 비참함을 짝으로 한다. 가난에서 탈출하려면 잘못된 것을 통해 배움으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모님께서 드린 두 번째 기도는 내 뜻과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기술로 다른 사람을 돕고…’ 그 말이 살아 내 앞에 있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내 가족부터 돕는 것이 순서였다. 내가 만 3년의 가출을 끝내고 집에 돌아갔을 때, 엄마와 동생들은 모두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집 앞 맞은편 교회 청년들의 전도로 가족 모두를 교회로 인도하셨다. 집에 가니 날 창피하다고 피해 다니던 남동생이 성경책을 손에 들고 반갑게 맞아줬다. 변한 동생들의 모습은 가족을 도우려는 내게 또 하나의 분명한 동기가 됐다. 이 무렵부터 가족들도 예전처럼 그렇게 나를 학대하지 않고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끔 억울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한참을 울고 나서는 ‘주님, 감사합니다. 가족은 저를 돌보아 주지 않았지만, 제게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고 서운한 마음을 떨쳐버렸다.
이는 순전히 사모님의 기도에 덕분이라고 믿는다.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사람인 내 힘과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동생을 돌보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그다지 내 인생에 소득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까지 6년간 했다.
인생에 공짜는 없다고 했던가. 이후 동생들은 모두 건강하게 잘 성장했다. 이들 중 두 명의 남동생은 ‘누나를 돕기 위해’ 보츠와나에서 10년 이상 선교 사역을 함께했다. 동생들은 모두 결혼을 했고 조카들만 6명이다. 이들은 아직 미혼인 내게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고 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