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의 사회학] 가볍지만 저급하지 않은… ‘키치문화’에 빠지다

입력 2012-09-07 18:20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35)의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가 지난 5일 한국 콘텐츠 사상 최고인 1억 건을 돌파했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불과 50여일 만의 일이다. 미국 ‘아이튠즈 뮤직비디오 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했고 빌보드 ‘소셜 차트’에도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강남 스타일’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정치인, 기업도 앞다퉈 이를 패러디한 영상을 공개했다. 전 세계가 푹 빠져 있는 ‘강남 스타일’에 숨은 인기 코드를 분석해 본다.

대한민국에 ‘스타일’ 열풍이 불고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각종 ‘스타일’ 패러디 영상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치인이나 기업들도 각종 스타일 패러디 영상을 제작하며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신만의 개성을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같은 스타일을 외치는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며 유대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패러디 봇물…너도 나도 ‘스타일’=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경찰 스타일’ 영상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영상은 부산 연제경찰서 방범순찰대 대원들이 경찰서 초소와 면회장, 유치장을 배경으로 경찰의 평소 일과를 코믹하게 담아냈다. 영상 속 경찰들은 경찰서 유치장에서 ‘말춤’을 추는가 하면 대중목욕탕에서 ‘조폭’에게 수갑을 채우고, 도둑을 쫓는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경찰 소개 축약판’이라며 열광하고 있다. 조회수는 이미 30만건을 훌쩍 넘어섰다. 이 영상을 제작한 부산 연제경찰서 김현식(24) 경위는 “늘 시민과 함께하는 친근한 이미지가 바로 ‘경찰 스타일’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도 ‘스타일’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강남 스타일’을 패러디한 사람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그는 ‘명동 스타일’이라는 영상 속에서 ‘말춤’을 춘다.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라는 가사에 맞춰 문 상임고문의 모습을 비춘다. 대선 경선을 앞두고 젊은층의 표심을 잡겠다는 의도로 ‘스타일’ 패러디 영상을 제작한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등장시킨 ‘그네 스타일’도 나왔다. ‘그네 광팬’이라고 밝힌 지지자가 제작한 이 동영상은 박 후보의 얼굴이 합성된 한복 차림의 배우가 단오에 그네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2분49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박 후보가 “전국 모든 지역이 각자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고 연설하는 장면도 포함됐다.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도 지난달 7일 열린 토론회에서 ‘말춤’을 추며 “너는 강남스타일. 나는 촌놈 스타일”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박 후보를 겨냥해서는 “불통 스타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스타일 패러디는 학계에도 등장했다. ‘통섭’의 저자로 유명한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최재천 스타일’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는 최 교수의 삶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이 책을 펴낸 명진출판사 관계자는 “스타일이라는 의미를 본받고 싶은 대상의 고유한 삶의 양식으로 보고 제목을 달았다”며 “교수가 아닌 지적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들여다보고 삶과 지식이 일치하는 스타일을 전달하려 했다”고 전했다.

기업들도 ‘강남 스타일’ 패러디에 가세했다. 신세계백화점은 개점 12주년을 맞는 마산점 홍보를 위해 ‘마산 스타일’이라는 영상을 제작했고 조회수가 45만건을 넘어섰다.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는 응원단장인 ‘애니비’를 등장시킨 ‘삼성 스타일’을 제작해 야구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스타일의 ‘빛과 그림자’=하나의 ‘스타일’ 아래 동질감을 느끼며 열광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물의 형태나 사람의 행동에 나타나는 독특하고 일정한 방식을 일컫는 ‘스타일’은 작게는 패션부터 크게는 삶의 양식, 국가나 기업의 경영까지 아우른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등장하는 ‘강남 오빠’는 거침없고 솔직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멋지고 품격 있지만 동시에 뜨거운 연애를 할 줄 아는 ‘반전’ 있는 남자다. 이 노래 속 강남은 고급스러움을 표방하면서도 솔직한 사람의 집합체라는 인상을 준다.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독특한 ‘스타일’로 자리 잡은 사례도 있다. 음악의 한 장르인 ‘록(Rock)’을 중심으로 ‘록 스타일’을 외치는 이들은 가죽 옷에 긴 머리를 고수한다. 이들은 외형적인 스타일 외에도 ‘남자다움’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말투나 행동에도 ‘록 스타일’을 강조한다. 홍대 한 클럽에서 록 밴드 드러머로 활동하는 김모(23)씨는 “‘록 스타일’인 우리에게 아이돌이나 귀여운 남성의 이미지는 혐오 대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스타일이 집단 내 동질감을 끈끈하게 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다른 스타일은 배척하는 ‘구별 짓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현택수 사회학과 교수는 “마니아를 만드는 문화 현상은 새로운 장르가 나올 때 자신들만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다른 문화를 배척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