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명호] 후보들 두렵지 아니한가

입력 2012-09-07 18:08


역시 그는 정치인으로서 멋이 있었다. 재임 시 경제 성적도 좋았다. 당연히 인기도 좋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위기 시에는 항상 매달릴 만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말이다.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 중 최고의 스타는 클린턴이었다. 그의 연설 시간은 무려 48분. 전 국민의 눈을 쳐다보며, 힘찬 손짓을 해가며, 좌중을 휘어잡았다.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게 하며.

1만5000여명의 전당대회 참석자들은 웃다가 환호하다가 눈물짓기까지 했다. 별명 ‘컴백 키드’(Comeback Kid·돌아온 주인공)처럼 그는 정말 환대받았다. 클린턴 하면 떠오르는 르윈스키 스캔들조차도 맛깔난 양념처럼 돼버렸다.

클린턴에 이어 8년 동안 대통령을 한 조지 W 부시.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 동안 부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7월 부시가 전당대회 불참을 통보하자 밋 롬니 후보 캠프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부시는 취임 당시 전임자인 클린턴을 기세 좋게 넘어섰다. 부시와 측근들은 대놓고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이라고 했다. 클린턴의 정책은 무조건 뭉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양당의 전당대회는 두 전직 대통령을 뚜렷이 대비시켰다.

무엇이 두 사람의 위상을 저렇게까지 갈라놓았을까. 나는 그 이유를 정치적 가치 추구와 소통력에서 찾는다. 부시 임기 8년 동안 미국을 지배한 키워드는 일방주의다. 물론 임기 초 발생한 9·11테러에 기인한다.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생겨났고, 이라크 침공의 근거가 됐다. 이후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전 세계 국가들을 줄 세웠다. 미국 내에서는 ‘닥치고 애국’이 국정운영 기조였다.

여러 면에서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화당 전통에도 어긋나는 것이었으며, 일방주의적 국내외 국정운영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상 기류 속에서 잠시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부시의 일방주의는 미 국민과 세계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을 얻지 못했다.

부시와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닥치고 애국’ 운영 기조는 여론과의 소통에서도 실패했다. 비판자들은 텍사스 출신인 그에게 ‘거들먹거리는 카우보이’라는 별명으로 비꼬았다. 경제도 엉망이 돼버렸다. 금융위기가 있었지만, 두 개의 전쟁에 들인 천문학적 전비(戰費)는 미국 경제를 더 험한 골짜기로 떨어뜨렸다.

클린턴의 소통력은 탁월하다. 그는 사람을 직접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정치를 시작해서 아칸소 주지사와 대통령, 그리고 튀임 이후에도 클린턴은 만난 사람의 명함을 받아 특징과 함께 인명 관리부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를테면 두 번째 만난 사람에게 “참, 지난번에 당신 아이가 아이비리그 대학에 간다고 했는데 잘됐느냐”고 묻는다. 대통령 또는 전직 대통령이 겨우 두 번째 본 자신에게 그런 반응을 보였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클린턴은 그런 소통력을 갖고 정치를 하고,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국민을 대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 문화가 없다.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생존자들도 정치적 설득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시대 변화로 보나, 잠재적 대권 주자들의 나이로 보나 앞으로는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지원이 이뤄질 것이다.

새누리당 후보인 박근혜,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문재인, 야권 단일 후보 가능성이 있는 안철수. 이들에게 클린턴과 부시의 명암은 무슨 의미인가. 대중은 우매해 보일 뿐이지 그렇지 않다. 시간은 걸릴지언정 냉엄한 평가를 한다. 후보들, 정말 두렵지 아니한가.

김명호 국제부 선임기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