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도화교회] 까막눈이 요즘 성경을 읽어… 이게 기적이고 은혜지

입력 2012-09-07 20:44


충북 제천시 ‘울고 넘는’ 박달재로부터 8㎞쯤 떨어진 백운면 도곡1리. 그야말로 ‘산 좋고 물 맑은’ 치악산맥 끝자락에 도화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고즈넉한 산골 마을의 풍경을 기대했지만 지난달 31일 찾아간 교회 주변의 사과밭에는 태풍 볼라벤이 할퀴고 간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채 빨갛게 익기도 전에 강풍을 맞은 사과들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고 추석 대목을 앞두고 속수무책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교회서 한글 배워 성경공부

“목사님, 제가 암에 걸렸다는데요?”

한글을 읽지 못하는 어르신이 서류 한 장을 들고 문순국(49) 목사에게 달려와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서류는 암에 걸렸다는 통지가 아니라 암 검진을 받으라는 안내장이었다. 웃지 못 할 해프닝 이후 문 목사는 문해(文解)학교를 열었다. 문 목사는 “글자를 모르니 창피해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계셔서 2005년 교회에서 한글학교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해학교 개교 때부터 교사를 맡고 있는 성도는 최성범(74) 할아버지다.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최 할아버지는 “할머니 제자들한테 ‘오늘은 이뻐지셨네요’ ‘좋은 옷 사 입으셨네요’ 뭐 그런 농을 치면서 즐겁게 가르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고 했다.

최 할아버지는 도시에 나가 있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손자를 돌보다가 크리스천이 됐다. 2004년 교회 공부방에 다니던 여섯 살짜리 손자를 교회에 데려다주다가 하나님을 만났다고 한다. “원래는 오랫동안 절에 다녔어요.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어머니 말씀도 안 듣고 절에 나갔는데 손자가 교회에서 잘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뒤늦게 어머니 유언을 따르게 된 셈이에요.”

문해학교 ‘이야기꾼’ 박만분(85) 할머니는 “나도 절에 댕기다가 9년 전부터 교회에 나왔지”라며 얘기를 꺼냈다. “우리 둘째 아들이 심부전증 환자였어요. 투석까지 하고 그래서 다 죽는다고 했는데 목사님이 만날 교회에서, 우리 집에서 기도해줬지. 교회에 나오기 전까지는 아주 미칠 지경이었는데 하나님 믿고 나서는 아주 편안해졌어요. 우리 아들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너무 고마워서 교회에 다녔어.”

박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하지만 교회 앞마당 꽃밭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까지 한 120리 걸리는 친정까지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가서 시집오기 전에 키우던 화초를 캐왔어.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건데 우리 집에다 심어놨다가 교회에 옮겨놨지. 그 화초는 내하고 같이 늙어 가는 겨.”

박 할머니는 18세 때 화당1리로 시집을 왔다. 박 할머니는 “시집 안 가면 일본 보국대로 간다니까 어떡해. 1945년 전쟁 끝나던 해였는데 집안에서 가라고 해서 면 서기를 하던 영감한테 시집을 갔지”라고 말했다.

문해학교 모범생은 유영애(73) 할머니다. 유 할머니는 “면사무소 가서 주민등록 등본도 못 뗐는데 지금은 다 할 줄 알아.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았는데 교회에 나와서 이제 내 앞가림은 할 줄 알게 됐어”라면서 웃었다. 옆에 있던 최 할아버지는 “유 집사가 농협에 가서 전표 직접 쓰고 돈 뽑았을 땐 정말 뿌듯했다”고 거들었다.

문해학교 반장을 맡고 있는 유 할머니는 무속인으로 살다가 20년 전쯤 크리스천이 됐다. “처음에 교회에 나왔을 때는 적응이 안 돼서 몸이 아프기도 했다”고 한다. 유 할머니는 “제천에서 태어났는데 경상도 사람한테 시집을 가서 경주에서 죽 무녀 생활을 했어. 영감이 교통사고로 가고 나서야 여기 고향으로 다시 와서 교회를 다녔지”라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의 안식처

다른 농촌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의 이주여성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도화교회에는 70여명 성도 가운데 7명이 필리핀, 베트남, 중국 출신의 이주여성이다. 이들은 교회에서 한국어 공부도 하고 꺼내기 힘든 집안 얘기도 나누면서 친목을 다진다.

이주여성의 맏언니격인 아더리타 이오르피아노(42)씨는 1997년 5월 필리핀에서 이 마을로 시집을 왔다. 2003년부터 교회 공부방에서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자연스레 크리스천이 됐다. 2007년 1종 보통 운전면허를 한 번에 취득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그는 문해학교에서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교회에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는 심했었다. “남편은 처음에 ‘일을 해야지 왜 교회에 가느냐’고 했는데 뭐라 그래도 제가 아무 대꾸를 안 하니까요(웃음). 가톨릭을 믿는 필리핀 친정에서도 뭐라고 했어요. 모태신앙을 따라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거기서 바꾸라’고 했어요.”

교회에 다니는 것을 격하게 반대했던 시어머니도 크리스천이 됐다. 이오르피아노씨는 “8년 전쯤에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시어머니한테 교회에 다니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려운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해서 전도했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아 집사님’으로 불리는 그의 믿음이 깊어진 것은 문 목사의 헌신 덕분이다.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보살피고 자신의 남매뿐 아니라 조카까지 키우느라 쉴 틈이 없었던 이오르피아노씨를 문 목사 부부가 가족처럼 돌봐줬다고 한다.

이오르피아노씨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필리핀 친정에 갈 때 목사님이 한 달 사례비 받으신 걸 다 저한테 주셨어요. 엄마한테 갖다주라고…”라면서 울먹였다. “친척도 못 해줄 일을 해주시는 목사님께 감사해요. 목사님이 이사 가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길이 되는 교회’를 꿈꾸다

13년 전에 세워진 도화교회는 주요 전도 지역인 도곡리와 화당리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이 지어졌다. 2002년 두 번째 교역자로 이 교회에 부임한 문 목사는 “도곡리, 화당리뿐 아니라 6개 리 이상이 전도 구역인데 너무 교회 이름이 한정적이었다”면서 “길 도(道)에다 될 화(化) 자를 써서 ‘길이 되는 교회’라는 나름의 의미를 붙였다”고 했다.

‘길이 되는 교회’라는 말에는 도화교회가 시골교회의 한 모델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문 목사의 의지가 담겨있다.

이런 뜻에서 아동그룹홈이 시작됐다. 아동그룹홈에는 갑자기 고아 신세가 된 남매가 처음 둥지를 틀었다. 2010년 1월 당시 초등학생 남매의 아빠가 생활고와 가정불화로 제초제를 들이키고 세상을 떠난 뒤 엄마도 집을 나갔다. 이후 남매는 줄곧 교회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교회 사택에는 이들 남매를 포함해 5명의 어린이들이 살고 있다.

문 목사는 또 올해 산촌유학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산촌유학센터는 도시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농촌을 체험하고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프로그램이다. 12명의 어린이들이 도화교회에서 올 여름을 보냈다. 문 목사는 “도시 어린이들은 농촌에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고, 이곳 어린이들에게는 도시 학생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목사가 처음부터 농촌 목회를 꿈꾼 것은 아니다. 그는 중국선교사로 사역하기 위해 대만에서 선교사 훈련을 1년쯤 받았고 수원에서 2년여간 부교역자로 있다가 도화교회에 부임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문 목사는 “한·중 교류가 본격화되면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뜻 깊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중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 목사의 아내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가 살아난 경험을 한 뒤 그는 신앙적으로 성숙했고 다른 비전을 품게 됐다.

이영숙(47) 사모는 2001년 1월 넷째를 출산하다가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문 목사는 “중환자실에서 아내가 28일간 무의식 상태에 있었고 세 번이나 심장이 멈추는 위기를 겪었다”고 했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산모도 의식이 돌아왔다. 문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기와 산모가 모두 건강하게 된 것”이라며 “이 지역이 쉽지 않은 목회지이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곳이라고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앞으로 노인그룹홈을 만드는 비전을 세웠다. 농촌에 혼자 남은 어르신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까지 신앙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아동그룹홈과 산촌유학센터, 노인그룹홈, 문해학교 등을 통해 농촌에 있는 사람들이 한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도시 성도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문 목사가 자주 묵상했던 성경 말씀은 이사야 41장 10절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도화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동서울종합터미널이나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충주행 고속버스를 타는 게 좋다. 충주까지 1시간 40분 이상 소요된다. 충주터미널에서 백운행 시외버스를 타고 25분쯤 달리면 백운면에 도착한다. 백운면에서 도화교회까지 택시로 5분 정도 걸린다.

제천=김경택 기자 ptyx@kmib.co.kr